영덕은 ‘바다의 도시’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동해안의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해수욕장과 어촌 마을은 여행자에게 평온한 일상을 선물한다. 하지만 영덕은 단순히 잠시 들르는 관광지가 아니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리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생활 도시다.
서울에서 4시간 남짓 걸리는 이곳은 번잡한 대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기 좋은 거리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닷바람이 몸을 스치고, 파도 소리는 마치 심장 박동처럼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아침이면 어부들이 잡아 올린 신선한 생선이 장터에 가득하고, 저녁이면 바닷가의 붉은 노을이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한다.
내가 영덕을 한 달 살기 도시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바다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보낸 30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나의 생활을 다시 정리하고 균형을 찾게 해준 시간이었다.
왜 영덕이었을까 – 해변과 대게, 블루로드
영덕의 상징은 단연 대게다. 겨울부터 봄까지 제철을 맞이하면, 강구항을 비롯한 항구마다 대게를 싣고 돌아온 어선들이 늘어선다. 항구의 공기는 갓 쪄낸 대게 특유의 향과 바닷바람이 뒤섞여 진하게 풍긴다. 시장에서는 대게를 삶아 껍질을 까주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막 삶아낸 대게를 한입 베어 물면 단맛이 먼저 퍼지고, 뒤이어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입안을 채운다. 이 맛을 알게 되면 왜 영덕이 대게로 유명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져온 어부들의 노동과 바다의 선물이 만들어낸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영덕은 대게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곳을 찾게 만든 또 다른 이유는 영덕 블루로드였다.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64km 이어지는 길은 A~D 코스로 나뉘는데, 각 구간마다 완전히 다른 풍경을 품고 있다. A코스에서는 고래불 해수욕장의 광활한 모래사장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B코스에서는 해안 절벽 아래로 파도가 세차게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발걸음을 동반한다. C코스는 소박한 어촌 마을을 지나 주민들의 일상과 마주할 수 있는 구간이다. D코스에서는 솔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바다가 어우러져, 걷는 내내 청량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영덕의 해변 역시 특별하다. 고래불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8km 이상 이어져 있어 동해안에서도 손꼽히는 크기를 자랑한다. 이곳은 성수기에도 과밀하지 않아 장기 체류자들에게 특히 적합하다. 모래사장을 따라 조깅을 하거나, 해변가에 돗자리를 깔고 책을 읽는 시간이 여유로운 일상의 일부가 된다. 장사 해수욕장은 고요하고 한적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좋았다. 해변가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파도를 바라보는 몇 시간은, 도시에서의 바쁜 하루보다 훨씬 값진 시간이 됐다.
이처럼 영덕은 대게의 도시이자, 바다와 길,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얽힌 도시였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보는 곳’으로서의 매력이 충분했다.
숙소와 생활비, 교통, 병원, 인터넷 환경
한 달 동안 머문 숙소는 강구항 근처의 원룸형 민박이었다. 보증금 10만 원, 월세 35만 원으로, 기본적인 가구와 주방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창문을 열면 항구와 바다가 보였고, 아침마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알람 대신 들려왔다.
생활비는 예상보다 합리적이었다.
- 고등어 한 마리: 3,500원
- 대게 1kg: 45,000~60,000원(제철 기준)
- 영덕 사과 1박스: 18,000원
- 제철 채소 한 단: 2,500원
- 회덮밥 1인분: 10,000원
장은 강구항 수산시장과 영덕시장, 그리고 농협 하나로마트를 번갈아 이용했다. 시장에서는 활기찬 상인들의 인심 덕에 덤을 얻는 일이 많았고, 직접 잡아온 해산물이 진열되어 있어 신선도는 최고였다.
교통은 버스가 주요 수단이었지만, 장기 체류자라면 렌터카를 대여하는 편이 훨씬 편리했다. 해안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며 소규모 어촌 마을에 들르는 재미도 있었다.
병원은 영덕아산병원을 비롯해 내과, 외과, 치과 등 개인 의원이 고르게 분포해 있어 생활 중 불편함은 없었다. 인터넷은 광랜 설치가 가능했고,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85~95Mbps로 원격 근무도 무리 없었다.
영덕에서의 일상 – 바다와 함께한 하루
영덕에서의 아침은 늘 바다로 시작했다. 강구항 산책로를 걷다 보면 새벽 어시장이 열려, 그날 잡아 올린 고등어, 오징어, 대게가 바로 경매에 부쳐졌다. 신선한 생선을 싣고 떠나는 트럭들과 상인들의 목소리가 하루의 활기를 알렸다.
오전에는 블루로드 일부 구간을 걷거나, 고래불 해수욕장에서 달리기를 했다. 길게 뻗은 백사장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고, 파도는 일정한 리듬으로 몸과 마음을 정리해줬다.
점심에는 소박한 해산물 백반을 즐겼다. 조림과 구이가 함께 나오는 밥상은 늘 든든했고, 미역국에 들어간 성게와 해초는 바다 향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오후에는 카페에서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었다. 항구를 바라보는 창가 자리에 앉으면, 커피 향과 파도 소리가 묘하게 어울려 집중이 잘됐다. 어떤 날은 자전거를 빌려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며 작은 어촌 마을을 탐방하기도 했다. 주민들과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도 진심 어린 환영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 무렵에는 노을이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석양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서 있었고, 하루가 고요히 마무리되는 순간은 언제나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영덕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체험 – 대게 축제와 블루로드 완주
영덕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체험은 단연 대게 축제다. 매년 3월 강구항 일대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영덕의 대표 행사로, 항구 전체가 붉은 대게 깃발로 물든다. 축제 기간에는 대게 시식회, 요리 경연, 어선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려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어우러진다. 바닷바람 속에서 맛본 갓 쪄낸 대게의 풍미는 평생 기억에 남을 맛이었다.
또 다른 체험은 영덕 블루로드 완주다. 총 길이 약 64km에 달하는 이 길은 동해안의 비경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A코스는 고래불 해수욕장을 따라 펼쳐져 있어 시원한 바다와 백사장의 조화를 즐길 수 있고, D코스는 해안 절벽과 솔숲이 어우러져 걷는 내내 풍경이 바뀐다. 코스를 나눠 며칠에 걸쳐 걸으며, 마을에서 묵고 주민들과 교류하는 경험은 단기 여행자가 절대 누릴 수 없는 기억이었다.
영덕에서는 또한 어촌 마을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직접 그물을 당기거나, 어선에 올라 새벽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를 체험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영덕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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