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에 도착한 첫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공기의 결이 달랐다. 습기가 가볍게 감도는 바람 속에 흙냄새가 스며 있었고, 멀리서 산 능선이 겹겹이 이어졌다. 청풍호는 잔잔했고, 물 위로 햇살이 번쩍이며 흘렀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동안 머릿속에 있던 일정표와 계획들은 점점 흐릿해졌다.제천을 한 달 살기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자연과 도시의 균형, 그리고 평일의 조용함이었다. 제천은 관광객이 주말에 집중되지만, 평일에는 주민들의 차분한 일상이 중심이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는 도시에서 잊고 지냈던 느린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청풍호 주변은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날씨에 따라 호수의 색이 변했고, 호수 위에 반사되는 하늘은 늘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런 변화는 단기 여행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