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 실전 가이드

발리 우붓 한 달 살기 – 바다 없는 발리에서 경험한 정글 속 힐링 루틴

sunny06301 2025. 8. 8. 22:16

발리를 떠올리면 대다수의 사람은 푸른 바다, 야자수, 리조트 수영장과 바다 위 선셋을 가장 먼저 연상한다. 나 역시도 발리를 처음 계획할 때는 당연히 해변가 근처에 머무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우붓(Ubud)’이라는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바닷가와는 정반대 방향인 내륙에 위치한 이 조용한 마을은 해변 대신 논밭과 정글, 사원, 예술 공방, 그리고 요가 센터로 가득한 공간이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의 속도에 지친 나는 ‘이번 한 달은 바다보다 초록이 많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우붓에서의 장기 체류를 결정했다. 사실 여행으로는 한두 번 스쳐갈 수 있는 마을일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살아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우붓은 매일 기도와 향으로 시작되는 마을이다. 사람들의 걸음도 느리고, 소리도 조용하다. 시계 없이도 하루의 흐름이 느껴지고, 자연과 함께 움직이며 사는 이곳에서는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스며든다. 바다 하나 없지만 마음이 넓어지는 곳, 발리 우붓. 이곳에서 보낸 30일은 내게 여행이 아닌 ‘생활’ 그 자체였다.

 

발리 우붓 한 달 살기

왜 우붓이었을까 – 해변 없는 발리에서 살아보기 

발리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은 푸른 해변과 리조트를 먼저 떠올린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오히려 해변 대신 정글과 논밭이 펼쳐진 내륙 마을 우붓에서 지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소음 없는 일상, 깊은 초록의 풍경,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이 모든 것이 도시와는 다른 호흡을 제공할 것 같았다.

우붓은 발리의 예술적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그림, 조각, 무용, 전통 악기 등 예술이 일상에 녹아 있다. 내가 머문 곳은 우붓 시내에서 오토바이로 10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는데, 아침마다 들려오는 닭 울음과 기도 소리, 저녁에는 개구리와 풀벌레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쿠타나 스미냑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곳에선 시간마저 천천히 흘렀다. 이 느림이 나를 매료시켰다. 처음 며칠은 답답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면서 나는 이 호흡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한 달 살기’에 가장 어울리는 곳은 어쩌면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저렴하지만 만족스러운 시골 생활 

우붓에서 내가 머문 숙소는 월 400달러의 전통 발리식 방갈로였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했으며, 넓은 정원 안에 위치한 단층 건물이었다. 숙소의 건축은 대나무와 석재로 이루어져 있었고, 건물 외관과 내부 모두 현지 전통 양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커다란 모기장이 달려 있었고, 벽면 일부는 개방되어 있어 자연 환기가 이루어졌다.

욕실은 반 야외 구조였는데, 샤워할 때마다 머리 위로 흔들리는 바나나 잎과 하늘이 보여서 이국적인 느낌을 더해주었다. 물은 정수 필터를 통해 공급되었고, 따뜻한 물도 안정적으로 나왔다. 처음 며칠은 적응이 필요했지만, 점차 이런 야외 구조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주방은 크지 않았지만 필수적인 조리 도구와 가스레인지가 구비되어 있었고, 냉장고 역시 넉넉한 용량을 갖추고 있었다. 마을 시장은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매일 아침이면 주민들이 갓 수확한 과일과 채소를 진열해 놓았다. 내가 자주 사던 건 바나나, 망고, 아보카도, 로컬 감자와 달걀 같은 기본 식재료였다. 가격은 한국에 비해 매우 저렴했고, 품질은 훨씬 신선했다.

와이파이는 숙소에 설치된 공유기를 통해 사용했고, 속도는 평균 30~50Mbps로 안정적이었다. 원격 근무 중 화상 회의나 클라우드 작업, 이메일 전송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때때로 정전이 발생했지만 대부분 5분 내로 복구되었고, 숙소 주인이 미리 준비해둔 휴대용 배터리와 랜턴 덕분에 불편함은 거의 없었다.

전반적으로 우붓의 생활 인프라는 '시골스럽지만, 기능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도시의 복잡함을 내려놓고 단순하고 느긋한 루틴을 따르기에 가장 이상적인 구조였다.

 

일상 루틴과 삶의 흐름 – 정글이 가르쳐준 리듬 

우붓에서의 하루는 새벽 6시에 닭 울음소리로 시작되었다. 창문 너머로 퍼지는 햇살과 짙은 초록의 숲 풍경은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맑게 했다.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기도 소리와 향 냄새는 그 자체로 '발리의 아침'을 상징했다. 나는 이른 아침 시간을 스트레칭, 간단한 요가, 그리고 5분 명상으로 시작했다.

아침 식사는 열대과일과 요거트, 간단한 나시고렝(볶음밥)으로 해결했다. 식사 후에는 근처 논길로 산책을 나섰다. 논 위로 살짝 퍼지는 물안개, 잎사귀에 맺힌 이슬, 그리고 눈앞에서 날아오르는 작은 새들. 우붓의 아침 풍경은 늘 같은 듯하지만 매일 다르게 다가왔다.

업무는 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진행했다. 숙소 안의 작은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작업에 몰입하는 시간은 서울에서보다 훨씬 집중도가 높았다. 창밖의 정글 풍경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고, 불필요한 방해 요소가 없었다. 종종 비가 내릴 때면,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작업하는 게 무척 고요하고 따뜻한 감각을 줬다.

오후에는 자유 시간이었다. 지역 커뮤니티 센터에서 열리는 요가 수업에 참여하거나, 발리 전통 요리 수업에 등록해서 현지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또 한 가지 자주 하던 활동은 스쿠터를 타고 주변 예술 마을이나 사원들을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스케줄 없이 움직이는 이 시간이 우붓 살기의 진짜 매력이었다.

저녁엔 현지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숙소에서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조용히 독서를 즐겼다. 인터넷으로 가족과 통화하거나, 그날의 일기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붓의 하루는 단순했지만 매일이 의미 있게 채워졌다.

 

변화의 시작 – 자연이 만든 마음의 여백

우붓에서 보낸 한 달은 단순한 체류를 넘어,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비로소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었다. 도심에서의 삶은 늘 해야 할 일, 채워야 할 일정으로 가득했지만, 우붓에서는 ‘비워도 괜찮다’는 감각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자연 속에 있으니, 내 안의 소음이 줄어들었다. 조용한 정글, 가만히 흔들리는 나뭇잎, 한가롭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는 힘을 얻게 되었다. 명상을 따로 하지 않아도, 그저 걸으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 템포 느려졌고, 타인과 비교하는 감정도 서서히 사라졌다.

생활의 리듬도 달라졌다. 이곳에서는 햇빛의 강도, 비의 소리, 새의 울음이 하루의 시간을 알려줬다. 알람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매일 일기를 쓰며 내 감정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다.

귀국한 후에도 이 여유를 간직하고 싶었다. 아침마다 10분씩 햇볕을 쬐고, 가벼운 명상과 산책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빠르고 빽빽하게 채워졌던 일정 속에서 나는 여백의 가치를 배웠고, 그것이 오히려 더 풍요롭다는 걸 우붓이 알려줬다. 그 한 달은 단순히 지낸 시간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방향을 정립한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