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 실전 가이드

나가노 한 달 살기 – 눈 덮인 온천 마을에서 느린 삶을 살아보다

sunny06301 2025. 8. 7. 20:17

도쿄의 바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한 달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러 지역을 비교하다가 '나가노'라는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온천, 설산, 소박한 마을, 그리고 느린 시간. 이 네 단어만으로도 이미 나의 결정은 정해져 있었다.

나가노는 일본 혼슈 중심부에 위치한 내륙의 고지대 마을이다. 겨울이면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고 공기가 맑다. 나는 1월의 나가노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기대 이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키장과 온천으로 유명한 관광지지만, 일상 속의 나가노는 훨씬 더 소박하고 깊이 있었다.

한 달 동안 나는 일본의 정적인 겨울을 살아보았고, 그 고요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가노 한 달 살기

숙소와 마을의 구조 – 느린 시간 속으로 들어가다 

내가 머문 곳은 나가노 시 외곽의 작은 민박집이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했고, 월세는 약 65,000엔(한화 약 58만 원)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숙소는 목조 단층 주택이었고, 방 한 칸, 주방, 화장실, 그리고 조그만 뜰이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눈 덮인 밭과 멀리 산이 보였고, 매일 아침 눈을 치우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이 마을은 편의점 하나 없이 조용했다. 대신 작은 식료품점이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현지 시장과 우체국, 작은 병원이 모여 있는 마을 중심부가 나왔다. 이 느린 구조 속에서 오히려 일상이 간결해졌다. 필요한 것만 사고, 필요한 만큼만 요리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했다.

밤이면 마을 전체가 고요했다. 눈 위를 걷는 내 발소리만 들릴 정도였고, 별빛이 눈에 반사돼 거리 전체가 은은하게 빛났다. 이런 조용한 마을 구조가 나의 하루 리듬을 더욱 단순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물가, 교통, 병원, 인터넷 환경 – 불편함은 없었다 

물가는 도쿄보다는 훨씬 저렴했고, 한국의 지방 중소도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한 품목도 많았다. 채소나 계란은 마을 시장에서 소포장으로 판매됐고, 생선은 일주일에 한 번 트럭 상인이 집 앞까지 와서 팔았다.

  • 계란 10개: 300엔
  • 쌀 2kg: 980엔
  • 미소된장: 200엔
  • 유부 초밥 도시락: 450엔

지역 주민 대부분은 장을 볼 때 마트보다 시장이나 직거래 장터를 더 선호했다.
나도 어느새 그 습관에 익숙해졌고, 상인들과 몇 번 인사를 주고받다 보니 작은 덤도 받게 되었다. 마트에서 사는 음식보다 시장에서 고른 식재료가 신선했고, 계절감 있는 식단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겨울철엔 지역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무, 배추, 밤 같은 재료가 자주 나왔고, 반찬도 한정식처럼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다.

교통은 단순했다. 기차역은 멀리 있었고, 버스는 하루 6회 정도만 운행됐다. 그래서 나는 전동자전거를 빌려 사용했다. 눈길을 달릴 수 있게 스터드 타이어가 장착된 자전거는 의외로 유용했고, 언덕을 오를 때도 무리가 없었다. 급할 땐 택시 앱을 활용했는데, 호출 후 20분 안에는 항상 도착했다. 택시 기사님들도 대부분 친절했고, 나처럼 단기 거주하는 외국인을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

병원은 마을 진료소를 이용했다. 한 번 감기 증상이 있어서 방문했는데, 예약 없이 접수가 가능했고, 간단한 영어 설명만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영어가 가능한 간호사가 상주하는 곳이어서 외국인에게도 꽤 편리한 환경이었다.

인터넷은 숙소에 광랜이 설치되어 있었고, 속도는 평균 80~100Mbps 수준을 유지했다. 화상 회의, 영상 스트리밍, 원격 작업도 모두 문제없이 가능했다. 작업용 클라우드도 빠르게 동기화되었고, 나가노처럼 고요한 지역에서도 ‘디지털 유목민’의 생활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 루틴 – 설산 속에서의 조용한 반복 

나가노에서의 하루는 오전 7시 기상으로 시작되었다. 창문을 열면 앞마당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 눈을 밀어내는 시간이 가벼운 운동이 되었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나면 산책을 하러 나갔다. 눈 덮인 들판과 마을 길을 따라 걷는 산책은 내 감정을 정리해주는 시간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업무 시간이었다. 일본은 시차가 있어 한국 업무와 겹치지 않아 집중이 잘 되었다. 점심은 주로 집에서 일본식 가정식을 만들어 먹었고, 오후엔 다시 산책을 하거나, 근처 도서관에 들르기도 했다.

저녁에는 작은 히터 옆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인터넷 강의를 듣기도 했고, 종이 노트에 하루 정리를 했다. 도시의 소음 없이 눈 속에서 보내는 이 루틴은 나를 아주 차분하게 만들어줬다.

 

느려진 시간과 달라진 생각들 

도쿄에 있을 땐 항상 “오늘 뭘 더 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썼다. 그러나 나가노에 머무는 동안은 “오늘 무엇을 느꼈는가”가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한 달 동안 나의 일정표는 아주 간단했고, 그 안에는 여백이 많았다. 하지만 그 여백 덕분에 나는 매일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고, 감정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나가노의 분위기는 나의 내면에도 영향을 주었다.

귀국 후, 나는 더 이상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하려는 조급함을 갖고 있지 않다. 중요한 일을 오전에 끝내고, 오후는 산책이나 독서 같은 ‘소비되지 않는 시간’으로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나가노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 다시 살아가는 방식을 조율하게 한 시간이 되었다.

 

온천과 정적인 일본 시골 문화 체험

나가노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온천 체험이었다. 내가 머물던 숙소 근처에는 마을 주민만 사용하는 작은 노천 온천이 있었다. 하루 300엔을 내면 입장할 수 있었고, 물은 지하에서 올라오는 천연 온천수였다.

매주 3회는 이곳을 찾았다. 겨울밤 눈이 내리는 가운데,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는 시간은 지금도 그리운 장면이다. 물속에서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주민들과 어색한 미소를 나누곤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공간이 주는 분위기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인상 깊은 체험은 마을 절의 조용한 다도 모임이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절의 승려가 열어주는 차 모임은 외국인도 참여할 수 있었다. 찻잎 향과 다기의 온기, 정적인 공간에서 나누는 무언의 시간은 ‘바쁘지 않아도 충분한 하루’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