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악사카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멕시코 남부의 작은 도시 오악사카(Oaxaca)는 세계적인 미식 도시이자 예술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하루 이틀 머물다 떠나기보다, 길게 머물며 골목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고, 시장 상인과 인사를 나누고, 카페 주인과 커피 취향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원래 멕시코시티나 칸쿤처럼 유명한 관광지를 중심으로 계획했지만, 여행 중 만난 친구가 “오악사카에서 한 달 살아보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을 해줬다. 그 한 마디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산과 계곡이 둘러싼 분지에 자리한 도시, 화려하지 않지만 색감이 강한 건물, 천천히 걷는 사람들의 걸음. 이 모든 것이 나를 끌어당겼다.
결국 나는 오악사카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동네에 숙소를 잡고, 한 달간 ‘여행객’이 아닌 ‘주민’의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한 달은 음식, 예술, 사람, 생활 모든 면에서 내 삶의 속도와 시선을 바꿔놓았다.
미식과 예술의 공존
오악사카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미식과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점이었다. 이곳은 멕시코 전통 요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몰레(mole)’의 발상지다. 초콜릿과 다양한 향신료, 고추를 섞어 만든 소스는 달콤하면서도 매콤하고, 깊은 맛이 있었다. 한 달 동안 나는 다섯 가지 종류의 몰레를 맛봤는데, 그 차이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즐거웠다.
예술 역시 오악사카의 중요한 얼굴이었다. 도시 곳곳에는 전통 공예품 가게와 현대 미술 갤러리가 공존했다. 골목을 걷다 보면 벽화와 설치미술이 불쑥 나타났고, 마을 축제 때는 길거리 전체가 예술 작품처럼 변했다. 주민들은 예술을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또 하나의 매력은 기후였다. 해발 약 1,500m에 위치한 덕분에 한여름에도 덥지 않고, 아침저녁에는 선선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기온은 걷기 좋은 도시의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음식과 예술을 마음껏 즐기며 살 수 있었다.
숙소와 생활 환경 – 저렴하고 편리한 장기 체류
나는 오악사카 시내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는 주택가의 2층 아파트를 한 달간 빌렸다. 월세는 350달러였고, 가구와 주방 집기가 모두 구비되어 있어 도착 즉시 생활이 가능했다. 거실 창문을 열면 붉은 기와 지붕이 이어지고, 멀리 산맥이 보였다.
집 근처에는 작은 시장과 슈퍼마켓, 빵집, 세탁소가 모두 도보 5분 거리 안에 있었다. 특히 매일 아침 문을 여는 빵집의 ‘판 데 욜로(Pan de Yema)’는 하루를 시작하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시장에서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저렴하게 살 수 있었고, 현지 치즈인 ‘케소 오아하케뇨(Queso Oaxaqueño)’를 자주 사 먹었다.
인터넷 속도는 평균 50Mbps로, 원격 근무와 영상 통화에 무리가 없었다. 전기도 안정적이어서 장기간 머물며 일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교통은 주로 버스와 도보를 이용했고, 택시도 저렴했다. 덕분에 생활비를 아끼면서도 필요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
일상 루틴과 문화 속으로의 스며듦
오악사카에서의 하루는 아침 시장 방문으로 시작됐다. 시장 안은 이른 시간부터 활기로 가득했고, 다양한 색의 과일, 향신료, 건고추, 전통 빵이 진열되어 있었다. 상인들은 외국인인 나에게도 친근하게 말을 걸었고, 몇 번 얼굴을 트니 덤을 얹어주기도 했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일을 하고, 점심 무렵이 되면 근처 타코 가게에서 간단히 식사했다. 오후에는 시내 중심가로 나가 골목을 걸으며 갤러리와 공방을 구경했다. 현지 장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작품 하나에도 수십 년의 전통과 기술이 녹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녁에는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매주 목요일, 중앙 광장에서는 무료 공연이 열렸고, 전통 음악과 춤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이런 문화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오악사카의 일부가 되어갔다.
변화의 시작 – 느려진 시간과 깊어진 시선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나에게 오악사카의 한 달은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이곳에서는 시계를 보지 않아도 하루가 흘렀다. 시장에서의 대화, 골목에서 마주친 벽화, 광장에서의 음악이 시간의 흐름을 대신 알려줬다.
바쁘게 일정을 채우던 습관은 서서히 사라졌다. 대신 한 가지 일을 천천히, 깊게 하는 시간이 늘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작은 변화에도 마음이 움직였다.
돌아와서도 나는 여전히 이 리듬을 지키려고 한다. 하루 중 일부는 의도적으로 비워두고, 그 시간에 차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는다. 오악사카가 가르쳐준 건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마음을 두는 방법’이었다.
오악사카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체험 – 전통 요리 수업과 알레브리헤 공방
오악사카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는 전통 요리 수업이다. 나는 현지 요리사에게 몰레와 타말레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시장에서 재료를 함께 고르고, 향신료를 갈아 소스를 만들며, 음식이 가진 역사와 의미를 들을 수 있었다. 완성된 요리를 함께 나누어 먹을 때, 그 맛은 여행 중 먹은 어떤 음식보다도 깊었다.
또 다른 체험은 ‘알레브리헤(Alebrije)’ 공방 방문이었다. 알레브리헤는 멕시코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상상 속 동물을 형상화한 목각 조각이다. 장인의 작업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고, 직접 색을 칠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예술 수업이었다.
이 두 가지 체험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오악사카의 문화를 내 손으로 느끼고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곳에서만 가능한 경험이었기에 한 달 살기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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