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말라가를 찾았던 건 단순한 휴양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도착하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 도시의 기온, 햇살, 거리의 분위기가 머무름에 더 어울린다는 걸 직감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말라가를 스페인의 유명 해변 도시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은퇴자들이 삶의 여유를 누리기 위해 몰려드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중해 특유의 따뜻한 바람, 저렴한 물가, 느긋한 삶의 리듬. 모두가 '살고 싶게 만드는 이유'였다.
스페인 남부의 이 평화로운 도시에서 나는 한 달을 보내며 실제로 살아보는 감각을 체험했다. 단기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로서 말라가를 마주하는 순간들은 이전에 어떤 관광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차분한 감정을 남겼다.
왜 말라가였을까 – 스페인 남부에서 삶을 배우다
많은 이들이 스페인 여행을 이야기할 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말라가는 그와는 다른 ‘생활의 도시’다. 여행지로서 화려함보다, ‘은퇴자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조용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
말라가를 한 달 살기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스페인 남부라는 지역의 기후와 생활 물가, 삶의 속도였다. 이 도시는 연중 300일 이상 맑은 날씨를 자랑하고, 겨울에도 영상 15도 안팎을 유지한다. 일광욕을 즐기는 노인들, 해변을 산책하는 커플들, 오후 2시면 가게 문을 닫고 낮잠을 즐기는 상인들. 도시 전반의 리듬이 느리다 못해 멈춰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느림에 매료됐다. 도시 전체가 ‘급할 게 없다’는 철학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그것은 서울에서 늘 시간에 쫓기던 나에게는 낯설면서도 부러운 풍경이었다.
생활 환경 – 숙소, 물가, 교통, 병원, 인터넷까지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말라가 중심가에서 트램으로 10분 거리의 아파트를 한 달간 임대했다. 월세는 약 650유로(한화 약 94만 원)로, 현지 기준에서도 저렴한 편이었다.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가 구비되어 있어 생활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발코니에서는 골목 아래로 흐르는 사람들의 느린 일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물가는 합리적이었다.
- 커피 1잔: 1.5유로
- 바게트 1개: 0.8유로
- 점심 타파스 세트: 6~8유로
- 시장에서 사는 채소 한 봉지: 3유로 미만
마트는 카르푸와 현지 로컬 마켓을 병행했다. 채소, 올리브, 햄, 와인을 매일 신선하게 구입할 수 있었고, 10유로로 하루 한 끼 이상의 식사가 가능했다.
교통은 말라가 메트로, 시내버스, 전동스쿠터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한 달 교통카드를 구입해 자유롭게 시내를 오갔고, 병원이나 약국은 중심가 근처에 다양하게 위치해 있어 필요할 때 바로 이용할 수 있었다. 영어가 어느 정도 통용되는 곳이기에 큰 불편은 없었다.
루틴과 일상 – 일 없이도 리듬이 있는 삶
하루는 늘 느긋하게 시작했다. 오전 8시쯤 햇살이 창문을 두드릴 때 일어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인근 빵집에서 막 구운 크루아상과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열었다.
오전 시간은 주로 숙소 발코니에서 책을 읽거나, 구시가지 골목을 산책하며 보냈다. 바닥이 고풍스러운 타일로 이어진 거리에는 늘 고양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고, 현지인들은 작은 광장에서 느릿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오후 2시 즈음에는 말라가 특유의 시에스타 문화가 시작됐다.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고 사람들은 식사 후 낮잠을 즐겼다. 이 시간에는 나도 숙소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낮잠을 자거나 일기 쓰기에 집중했다.
해가 길어지는 저녁이면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잔잔히 바다 위를 흘러갈 때, 말라가의 하루가 끝나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변화의 시작 – 말라가에서 얻은 것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을 수도 있지만, 말라가에서의 한 달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하게 만들었다. 빠른 속도에 익숙했던 나는 처음엔 이런 느긋한 리듬에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림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생각과 감정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선 미뤄뒀던 책들을 읽고, 그동안 바빠서 놓쳤던 감정을 글로 옮기는 시간을 가졌다. 또, 처음 보는 현지인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매일 마주치는 빵집 주인과 안부를 묻는 일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서울로 돌아온 지금도 나는 여전히 주말이면 '말라가 리듬'을 떠올리며 아침을 천천히 열고, 스페인식 타파스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말라가는 나에게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조급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려준 학교였다.
말라가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체험 – 현지 시장 투어와 지중해 쿠킹클래스
말라가에서는 단순히 관광지를 보는 것을 넘어, 현지 시장을 탐험하고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경험이 가능했다. **아타라사나스 시장(Mercado Central de Atarazanas)**은 말라가에서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으로, 이곳의 쿠킹클래스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수업이었다.
나는 아침에 셰프와 함께 시장을 돌며 신선한 생선, 토마토, 올리브유, 각종 허브 등을 구입했고, 이어지는 클래스에서는 해산물 빠에야와 가스파초를 직접 만들어봤다. 조리 중간중간, 셰프는 각 식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렇게 조리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단순한 요리 수업이 아니라 말라가의 음식 문화를 오감으로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완성된 요리를 함께 나누며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관광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깊이를 주었다. 이 시장 체험과 쿠킹클래스는 말라가 한 달 살기의 ‘하이라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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