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은 전라북도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도시다. 바다와 내륙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중심에는 천년의 역사를 품은 고창읍성이 있다. 나는 도시 생활에서 조금은 떨어진, 바닷바람과 흙냄새가 공존하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창에서의 한 달을 계획했다.
고창은 여행지로도 유명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아침마다 읍성 돌담길을 산책하거나, 저녁에 갯벌 위로 지는 노을을 보는 일은 관광객이 잘 모르는 일상이다. 시장에서는 해산물과 농산물이 신선하게 쌓여 있고, 마을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미소로 인사한다.
이 한 달 동안 나는 숙소를 구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다니며, 때로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고, 때로는 읍성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살아본다’는 건, 여행으로는 놓치는 풍경과 사람을 알게 되는 일이라는 걸 고창에서 느꼈다.
왜 고창이었을까 – 성곽과 갯벌이 주는 안정감
고창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풍경’이었다. 한쪽에는 고창읍성이 있어 천천히 걸으며 역사와 마주할 수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구시포 해변과 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이 두 곳이 주는 감각은 전혀 다르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고창읍성은 조선시대 석성으로, 성곽 위를 걸으면 읍내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아침은 특히 고요하다. 돌담에 이슬이 맺히고, 풀잎 사이로 바람이 스친다.
반면 구시포 해변과 갯벌은 활기차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고, 물이 빠지면 드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갯벌 위에는 게, 조개, 갯지렁이 등이 살아 움직이고, 아이들은 장화를 신고 조개를 캐느라 바쁘다.
이렇게 ‘성곽의 고요함’과 ‘바다의 생동감’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곳이 흔치 않다. 게다가 고창은 교통이 편리하고, 생활 인프라도 적당히 갖춰져 있어 장기 체류지로 최적이었다.
숙소와 생활비, 교통, 병원, 인터넷 환경
한 달 살이 숙소는 읍성 근처의 원룸을 선택했다. 월세 28만 원, 보증금 10만 원, 기본 가전과 주방 도구가 갖춰져 있어 입주 당일부터 생활이 가능했다. 창문을 열면 읍성 돌담이 보이고, 저녁이면 성벽 조명이 은은하게 켜졌다.
생활비는 서울보다 훨씬 저렴했다.
- 활전복 1kg: 18,000원
- 새조개 500g: 6,000원
- 대파 한 단: 2,000원
- 고창 수박 한 통: 28,000원
장은 주로 고창시장과 대형마트를 번갈아 봤다. 시장에서는 해산물이 신선했고, 상인들이 요리법까지 알려주곤 했다.
교통은 읍내에서는 도보로 충분했고, 해변이나 인근 마을로는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는 30~40분 간격으로 운행했고, 자전거를 타면 갯벌까지 20분이면 도착했다.
병원은 종합병원과 여러 의원이 있어 진료가 편했고, 인터넷은 광랜이 설치된 숙소를 골라 다운로드 속도 85~90Mbps를 유지했다. 원격 근무도 무리 없이 가능했다. 특히 밤에도 속도 저하가 거의 없어, 대용량 파일 전송이나 실시간 영상통화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장기간 체류 중 인터넷 품질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은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고창에서의 일상 루틴과 마을 풍경
아침은 고창읍성 산책으로 시작했다. 성곽 위에서 바라보는 들판과 멀리 보이는 서해의 수평선은 매일 다른 색을 띠었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일을 하거나 읍내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고창의 카페들은 대부분 큰 창을 통해 들판이나 바다를 볼 수 있게 해두어,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에 좋았다.
점심에는 장터 국밥집에서 소고기 국밥을 먹거나, 바닷가 근처 식당에서 새조개 샤부샤부를 즐겼다. 오후에는 구시포 해변이나 선운산 자락을 걸었다. 해변에서는 갈매기와 어부들의 움직임을 보고, 산에서는 야생화를 발견했다.
저녁 무렵이면 해변에서 노을을 보았다. 구시포 해변의 노을은 갯벌 위에 붉은빛이 번져 환상적이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건 고창살이의 큰 즐거움이었다. 노을이 물러난 뒤에도 해변에는 잔잔한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이어져, 하루의 마지막까지 바다와 함께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은 모래 위에 앉아 바람이 식을 때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 달이 만든 변화 – 고창살이가 남긴 가치
고창에서의 한 달은 ‘자연 속에서의 균형’을 가르쳐줬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던 나는 일정과 계획에 집착했지만, 이곳에서는 하루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법을 배웠다.
성곽을 걸으며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해변에서 밀물과 썰물의 리듬을 보며 내 생활 리듬도 맞췄다. 아침에 서두르지 않아도 하루가 충분히 길다는 걸 알았다.
사람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시장에서 몇 번 만난 상인과 안부를 나누고, 해변에서 만난 주민과 조개 캐는 팁을 공유하며 친밀감이 생겼다.
이런 관계와 시간의 여유는 돌아온 뒤에도 내 삶의 기준이 됐다. 고창살이는 ‘천천히 사는 것’이 결코 뒤처지는 게 아니라는 확신을 줬다.
고창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체험 – 갯벌 체험과 선운산 단풍
고창에선 꼭 해봐야 할 체험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구시포 갯벌 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선운산 단풍 여행이다.
구시포 갯벌은 서해에서도 손꼽히는 청정 갯벌이다. 장화를 신고 갯벌로 나가 조개를 캐면, 바닷바람과 갯벌 흙냄새가 어우러져 묘한 해방감을 준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교육적인 경험도 된다.
선운산 단풍은 가을의 절정이다. 붉은 단풍과 사찰의 고즈넉함이 어우러져, 사진보다 실제가 훨씬 아름답다. 단풍 아래 앉아 도시락을 먹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완성된다.
이 외에도 복분자주 시음, 수박 수확 체험, 바지락 캐기 등 계절별로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이런 경험은 고창에서 한 달을 살아야만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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