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 도착한 날, 차창 밖으로 연이어 펼쳐지는 산 능선이 시선을 붙잡았다. 대관령을 넘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서울에서 느끼던 공기보다 선명하게 차갑고 맑았다. 도로 옆으로는 풀밭이 이어지고, 목장 울타리 안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이 보였다. 하늘은 마치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왔다.
이곳을 한 달 살기 장소로 고른 이유는 단순히 공기가 좋다는 것 이상이었다. 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늘 일정이 빽빽했고, 쉼표 없는 하루가 이어졌다. 평창은 그러한 일상에 의도적인 여백을 넣어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첫날 밤, 숙소 주변은 적막했다. 빛 공해가 거의 없어 별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창밖에서는 풀벌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오랜만에 귀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이 한 달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시간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 평창이었을까 – 대관령과 산골 마을의 매력
평창을 한 달 살기 장소로 선택한 데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서울에서 수년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쫓아 살았다. 시간표는 언제나 빽빽했고, 하루 끝에는 “내일은 더 해야 한다”는 압박이 남았다. 그러다 문득, ‘조금 다른 리듬을 가진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조건을 충족하는 첫 번째 후보가 바로 평창이었다.
평창은 계절의 결이 뚜렷한 곳이다. 봄에는 대관령 초지가 부드럽게 깨어나고, 초여름에는 구름이 산 능선을 따라 천천히 흘러간다. 가을이면 억새가 바람결에 흔들리며 은빛으로 물결치고, 겨울이면 눈이 소리 없이 대지를 덮는다. 서울에서 바라보는 계절이 단순한 배경이라면, 평창에서의 계절은 생활의 일부가 된다.
마을 풍경은 한 달 살기에 적합했다. 집집마다 작은 텃밭이 있고, 텃밭에는 감자와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흙냄새와 풀냄새가 섞여 들려왔다. 이웃 주민들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고,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이런 여유와 개방적인 분위기는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게 했다.
특히 대관령은 평창의 심장 같은 곳이었다. 나는 주말마다 대관령 정상 부근을 걸었다. 구름이 산등성이에 걸려 능선을 따라 흘러가고, 능선 아래로는 풀밭과 목장이 이어졌다. 바람은 차갑지만 거칠지 않았고, 그 속에서 서 있으면 마음속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한 달 살기에서 내가 기대한 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생활 속도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었다. 평창은 이 요구를 충족시켰다. 대관령의 바람, 산골 마을의 조용한 길, 그리고 주민들과의 짧은 대화까지 모두가 새로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평창의 생활 환경 – 숙소, 생활비, 교통, 병원, 인터넷
평창에서 한 달을 살면서 가장 먼저 안정시킨 부분은 숙소였다. 내가 머문 숙소는 평창읍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소규모 펜션이었다. 한 달 임대 계약을 할 때 주인장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여기 오면 잠이 먼저 많아진다"고 웃었다. 보증금은 20만 원, 월세는 45만 원이었고, 주방과 기본 가전이 완비돼 있어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마당 너머로 산 능선이 보였고, 해가 질 무렵이면 산 위로 노을빛이 스며들었다.
생활비는 예상보다 합리적이었다. 장터에서 감자 5kg은 10,000원, 제철 채소 한 봉지는 4,000원, 평창 막국수 한 그릇은 9,000원이었다. 현지 목장에서 우유를 사 마시는 것도 즐거운 루틴이었다. 유리병에 담긴 신선한 우유 한 리터는 3,500원이었고, 아침마다 커피에 넣어 마셨다.
교통은 자가용이 있다면 훨씬 편리하지만, 버스와 도보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했다. 읍내와 주요 마을, 대관령 주변은 버스로 연결됐다. 다만 배차 간격이 길기 때문에 장보기나 외출 계획은 미리 세워야 했다. 병원은 평창병원과 읍내 의원이 있었고, 약국도 몇 군데 있었다. 응급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의 진료는 읍내에서 해결 가능했다.
인터넷은 처음 걱정했지만 의외로 안정적이었다. 숙소에 광랜이 설치돼 있었고, 원격 근무와 화상회의도 문제없이 진행됐다. 카페나 마을 커뮤니티 센터에서도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돼 작업 환경이 편리했다. 평창의 생활 환경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시골’이 아니라, 도시의 편리함과 시골의 여유를 함께 가진 균형 잡힌 구조였다.
산골에서 일하며 살기 – 디지털노마드 루틴
평창에서의 하루는 산책으로 시작됐다. 오전 6시, 대관령 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걷다 보면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산 능선 너머로 햇살이 스며들고, 길가에는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자연스러운 배경음이 됐다.
오전 9시부터는 숙소 거실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노트북을 창가에 두고 기획안 작성, 원고 작업, 자료 조사 같은 집중도가 높은 업무를 진행했다. 창밖의 산과 하늘이 매일 달라 보였기 때문에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잠시 휴식이 됐다.
오후에는 주로 작업 장소를 바꿨다. 평창읍의 조용한 카페, 대관령 전망이 보이는 카페, 또는 마을 커뮤니티 센터를 번갈아 이용했다.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는 자료 정리나 회의, 이메일 답변 등 유연한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이었다.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능선과 흘러가는 구름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늦은 오후 5시쯤에는 다시 대관령 근처 산책로를 걸었다. 저녁 무렵의 바람은 한낮보다 선선했고, 억새 사이로 붉은 노을빛이 번졌다. 이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하루의 긴장을 정리하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한 달이 만든 변화 – 평창살이가 남긴 가치
평창에서 한 달을 살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생활의 속도였다. 도시에서 살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일정이 꽉 차 있었다. 이동 시간, 회의, 마감 준비, 다음 날 계획까지 하루를 채우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평창에서는 의도적으로 빈 시간을 만들었다. 이 빈 시간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점 편안하게 다가왔다.
아침에는 대관령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하루의 일부가 되었다. 한적한 산책로를 걸으며 새소리를 듣는 시간은 단순한 산책을 넘어 하루의 방향을 조용히 정리하는 순간이었다. 오전 업무를 시작할 때 마음이 안정된 상태여서 더 차분하고 집중력 있는 작업이 가능했다.
오후에도 평창만의 시간이 있었다. 도심에서라면 회의와 약속으로 가득 찼을 시간이, 평창에서는 커뮤니티 센터나 카페에서 조용히 글을 쓰거나 자료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 틈새 시간 속에서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저녁 무렵, 하늘이 붉게 물들면 숙소 근처 산책로를 걸었다. 그 시간의 공기는 낮보다 차갑고 맑았으며, 억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런 저녁은 도시에서 결코 얻기 어려운 고요였다.
대관령의 바람을 직접 느끼지 않더라도, 평창에서 배운 ‘속도를 늦추는 법’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평창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내 생활 기준을 다시 세워준 경험이었다. 한 달 동안 배운 여유와 균형은 내가 어디에서 살든 유지하고 싶은 생활의 방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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