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 실전 가이드

스페인 세비야 한 달 살기 – 플라멩코와 오렌지 향이 머무는 일상

sunny06301 2025. 8. 2. 23:05

세비야에 도착한 순간, 공기가 다르다는 걸 바로 느꼈다. 마드리드에서 내려오는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날아왔을 뿐인데, 공항 문을 나서자 다른 세계가 열렸다. 건조한 공기에 달콤한 오렌지 향이 섞여 코끝을 자극했고, 하늘은 믿기 힘들 만큼 투명한 파란색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하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차츰 도시의 심장부를 향해 변화했다. 길가에는 줄지어 심어진 오렌지 나무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하얀 벽과 붉은 기와를 얹은 건물들이 도로 양옆에 늘어서 있었다. 드문드문 열린 창문 사이로 빨래가 펄럭이고, 어느 건물 발코니에서는 붉은 꽃이 넘칠 듯 피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 첫 번째 인상적인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골목 어딘가에서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 뒤로 힘 있는 발 구름 소리와 함께 플라멩코의 리듬이 이어졌다. 음악이 골목과 광장을 채우는 동안, 사람들은 그 소리를 일상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비야는 관광지를 넘어, 도시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무대 같았다. 카페 테라스에 앉은 현지인들은 카페 콘 레체와 타파스를 즐기며 오후를 보내고 있었고, 골목 어귀에는 작은 시장이 열려 있었다. 나는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 한 달 동안 이 도시와 함께 숨 쉬고 살아보기로 했다.

 

 

스페인 세비야 한 달 살기

왜 세비야였을까 – 남부 스페인의 매력 

세비야를 한 달 살기 도시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은 남부 스페인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시이자, 느린 속도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드문 장소였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는 활기차고 세련됐지만, 속도가 빠르다. 그에 비해 세비야는 하루가 해의 각도와 그림자에 맞춰 흐른다.

아침이면 오렌지 향이 골목을 채운다. 숙소에서 나와 몇 발자국만 걸으면 작은 광장이 나온다. 광장 한가운데 분수대가 있고, 그 주변을 둘러싼 카페와 가게들이 하루를 준비한다. 바리스타는 커피를 내리며 단골과 인사를 나누고, 빵집에서는 갓 구운 바게트와 크루아상이 줄지어 진열된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도시는 잠시 뜨거운 햇볕을 피하는 듯 조용해진다.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바람이 부드럽게 스친다. 세비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점심 이후에는 시에스타 시간으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거리가 한산해진다. 하지만 이 고요 속에서도 카페나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현지인들이 천천히 식사를 즐기고 있다.

저녁 무렵, 세비야는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거리에 불이 켜지고, 히랄다 탑은 노을빛을 받으며 황금색으로 물든다. 골목에서는 플라멩코 무용수의 발 구름과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소리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세비야의 호흡과도 같다.

이 모든 리듬은 한 달 살기에 완벽하게 어울린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하루의 속도가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든다.

 

 

세비야의 생활 환경 – 숙소, 생활비, 교통, 병원, 인터넷

세비야에서의 숙소는 구시가지와 강변 사이, 걸어서 대성당까지 10분이면 닿는 스튜디오 아파트였다. 붉은 기와지붕이 이어진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의 2층이었다. 계단을 오르면 작은 복도가 있었고, 문을 열면 부엌, 거실, 침실이 아담하게 연결돼 있었다. 부엌에는 전기레인지, 전자레인지, 오븐, 세탁기가 갖춰져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도착 첫날 주인장이 준비해준 오렌지 주스와 치즈가 들어 있었다. 창문을 열면 맞은편 건물의 발코니에서 제라늄 화분이 늘어져 있어 아침마다 눈길을 끌었다.

생활비는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 비하면 훨씬 합리적이었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바에서는 카페 콘 레체 한 잔이 1.5유로, 타파스는 종류에 따라 2.5~3유로였다. 시장에서 오렌지를 1kg에 2유로에 살 수 있었고, 하몽과 올리브는 적당한 가격에 구입이 가능했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트리아나 시장에서는 신선한 해산물과 빵을 직접 고를 수 있었고, 상인들은 간단한 스페인어와 손짓으로도 친절히 소통해 주었다.

교통은 도보와 버스, 트램으로 충분했다. 세비야는 도보 이동이 편리한 도시라 구시가지 안에서는 거의 걷기만으로 생활이 가능했다. 조금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트램을 탔는데, 정류장이 잘 안내되어 있어 초행자도 어렵지 않았다.

병원은 세비야 종합병원과 개인 클리닉을 이용할 수 있었고, 여행자 보험으로 영어 진료가 가능했다. 약국은 시내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간단한 처방약은 신속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인터넷은 숙소 와이파이가 안정적으로 90Mbps 이상의 속도를 유지했고, 카페 와이파이도 원격 근무와 화상회의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문화 도시에서 일하며 살기 – 디지털노마드 루틴 

세비야에서의 하루는 아침 햇살과 함께 시작됐다. 아침 7시, 창문 너머로 오렌지 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이 방 안을 물들였다. 숙소 근처 골목에는 이른 시간부터 카페 문이 열리고, 바리스타가 하루 첫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는 숙소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책상을 창문 옆에 두고 작업을 하면 기타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골목의 발자국 소리가 자연스럽게 배경이 됐다. 오전에는 기획안 작성, 원고 작업, 자료 조사 등 집중도가 높은 작업을 처리했다.

오후에는 카페로 이동했다. 'La Cacharrería'는 창가 자리에 앉으면 골목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작업할 수 있었고, 빈티지한 인테리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기에 좋았다. ‘Virgin Coffee’는 커피 맛이 뛰어나고 공간이 넓어 장기 체류자나 원격 근무자들이 자주 찾았다.

오후 3시 이후에는 강변 산책이 일과의 일부였다. 트리아나 지구로 건너가는 다리를 걸으며 구시가지의 풍경을 바라보고, 강변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가벼운 업무를 이어갔다. 저녁에는 플라멩코 공연을 보거나 현지인들과 타파스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런 루틴은 매일 반복되었지만, 매번 다른 색채와 소리를 주었다.

 

 

한 달이 만든 변화 – 세비야살이가 남긴 가치 

세비야에서 한 달을 보내며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시간과 여유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한국에서는 늘 바쁜 일정 속에서 움직이며 하루를 꽉 채워야 만족했지만, 세비야에서는 여유가 곧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걸 체감했다.

오렌지 나무 아래서 커피를 마시며 보내는 20분, 골목에서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플라멩코를 바라보며 멈춰 서는 10분이 하루 전체를 다르게 만들었다. 이런 시간들이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고, 업무와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귀국 후에도 세비야에서 배운 리듬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 일정 속에 여유 시간을 의도적으로 남겨두고, 주말이면 강변이나 공원을 찾는다. 세비야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내 생활 속 기준을 재정립하게 해 준 경험이자 지금도 영향을 미치는 생활의 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