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빠르게 흐른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울리는 알람과 급하게 마시는 커피, 교통 체증과 빼곡한 일정, 사람들과의 끝없는 소통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지쳐갔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무거운 짐처럼 가슴에 얹혔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들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딘가 조용하고, 나를 몰라도 되는 사람들이 있고, 바람이 천천히 부는 공간. 그 기준으로 고른 지역이 바로 전라남도 보성이었다.
보성은 녹차밭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너머에 더 많은 조용함이 숨어 있다. 차분한 바람과 잔잔한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낮은 말투는 이방인을 편안하게 맞아주었다.
이 글은 보성에서 실제로 한 달을 살며 경험한 숙소, 식비, 교통, 병원, 인터넷, 디지털노마드 업무 환경, 정서적 변화까지 모두 기록한 체험 보고서다.
도시를 떠나 보성으로 간 이유 – 차분함이 필요했던 순간
도시는 빠르다. 매일 아침 수많은 알림이 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 회의와 마감을 반복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살고 있다’기보다는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러다 문득, 내 일상을 잠시 멈춰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하루 이틀 여행이 아니라, 한 달 정도 다른 곳에서 살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떠오른 지역이 전라남도 보성이었다.
보성은 녹차밭으로 유명한 조용한 도시다. 관광지가 있지만 과도하게 상업화되진 않았고, 무엇보다 자연이 주는 차분함이 매력적이었다. 푸르른 녹차밭과 들판, 그 사이로 난 좁은 길들이 ‘숨을 쉬어도 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서울에서 KTX로 순천까지 간 뒤, 보성행 시외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더 이동하면 도착한다. 거리도 적당했고,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엔 충분했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공기였다. 바람에 녹차 잎이 스치는 냄새가 났고, 하늘은 한결 높고 맑았다.
이 도시에는 ‘조용함’이라는 감정이 살아 있었다.
보성은 여행지로도 좋지만, 살아보기엔 더 좋았다.
짧은 여행은 풍경만 스치지만, 살아보기는 사람과 리듬을 기억하게 해준다.
그 리듬 안에 내 하루를 맞춰보는 일, 그것이 이번 체험의 시작이었다.
보성의 실제 생활 환경 – 숙소, 장보기, 교통, 병원, 인터넷
보성에서 지낸 곳은 보성읍 외곽의 작은 단독 원룸이었다. 지은 지는 오래됐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가구와 가전이 대부분 갖춰져 있었다. 월세는 22만 원, 보증금은 10만 원. 숙소 옆에는 감나무가 있고, 새벽이면 닭이 울고, 낮이면 마을 방송이 들렸다.
도시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생활의 소리였다.
식재료는 주로 보성시장과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샀다.
시장에서는 직접 기른 채소와 수산물, 반찬류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 상추·깻잎 세트: 1,800원
- 계란 30개: 5,000원
- 생선 2마리(우럭): 4,200원
- 배추김치 1kg: 3,500원
- 국거리 소고기 100g: 3,300원
이런 구성으로 장을 보면 일주일 식비는 3만원 수준이었다.식당도 백반, 국밥, 순대국 등 7천 원대 식사 위주여서 부담이 적었다.
교통은 도보, 자전거, 버스를 병행했다. 읍내는 도보로 충분히 생활권이 확보됐고, 외곽 지역은 버스를 이용했다. 보성-율포 해수욕장이나 대한다원까지 가는 노선은 하루 5~6회 정도 있고, 시간표를 잘 체크하면 활용이 가능하다.
택시는 콜 시스템을 이용했으며 평균 대기시간은 10~15분, 기본 요금은 4,800원 선이었다.
병원은 보성의료원을 중심으로 내과, 치과, 정형외과, 한의원이 읍내에 몰려 있고, 약국은 군청 인근에 여러 곳이 있다. 일반적인 감기나 통증 치료는 무리 없이 가능했고, CT·X-ray 정도의 검사도 가능했다.
인터넷은 숙소 기준 광랜이 설치되어 있었고,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85~95Mbps로 원격 업무에 불편함이 없었다.
카페는 읍내에 3곳 정도가 있으며, 그중 ‘보성커피’, ‘녹차길다방’은 와이파이와 콘센트 모두 갖춰져 있어 디지털노마드에게 적합했다.
시골에서 일하며 살아보기 – 디지털노마드의 현실 루틴
보성에서의 하루는 평소와 달랐다.
서울에서는 출근하지 않아도 늘 긴장 상태였지만, 이곳에선 스스로 ‘느려지는’ 것을 허락할 수 있었다.
나의 하루는 아침 6시 반 기상으로 시작됐다. 근처 들판과 마을길을 30분 정도 산책하며 몸과 마음을 깨웠다.
녹차밭 옆을 걷는 그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맑고 순한 시간이었다.
오전 9시부터는 노트북을 켜고 콘텐츠 기획, 글쓰기, 클라이언트 업무를 진행했다. 숙소에서는 오전 작업이 잘 되었고, 오후에는 카페로 이동했다. 보성커피는 한적한 분위기와 함께 녹차라떼가 정말 훌륭했고,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루 평균 작업 시간은 5~6시간이었지만, 체감상 훨씬 효율적이었다. 서울에서보다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환경이 주는 영향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바로 옆 논에서 일하던 어르신이 “노트북 들고 다니는 거 처음 본다”고 했을 때,
나는 이곳에서 정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는 버스를 타고 율포해변으로 나가 석양을 봤다.
조용한 파도 소리와 붉게 물든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풀렸다.
이곳에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단, ‘그냥 있으면서도 괜찮다’는 감정이 우선되었다.
느림이 선물한 여백 – 보성 한 달 살기의 감정적 변화
보성에서의 한 달은 단지 일상의 탈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회복’에 가까운 과정이었다. 도시에선 할 일을 마치고도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가치 있다’는 사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녹차밭은 매일 색이 달랐다. 아침엔 푸르렀고, 오후엔 은은했으며, 비 오는 날엔 진한 녹색으로 변했다.
그 속을 걷고 있으면 마음도 그 색을 따라 움직였다.
여유와 느림, 단순함이 다시 나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서울로 돌아온 지금, 나는 하루 한 번은 그 시간을 떠올린다.
복잡한 일이 생기면 ‘보성에선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곳은 지금도 그대로일 것이다. 느린 속도, 조용한 바람, 녹차 향기, 그리고 나를 다시 돌봐준 그 시간까지.
보성 한 달 살기는 끝났지만,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다음에 또 한 달을 살아야 한다면, 나는 다시 보성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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