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 실전 가이드

태안 한 달 살기 가이드 – 서해 노을과 갯벌이 주는 조용한 삶의 쉼표

sunny06301 2025. 7. 26. 18:02

서해안에 자리한 태안은 해수욕장과 갯벌, 노을이 어우러진 조용한 해변 도시다. 이 글은 실제로 태안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본 체험을 바탕으로, 숙소, 물가, 교통, 병원, 인터넷, 디지털노마드 업무 환경, 주민 분위기까지 현실적인 정보를 모두 담았다. 여행이 아닌 ‘살아보기’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실전 가이드.

 

태안 한 달 살기 가이드

 

 

왜 태안이었을까 – 조용한 바다 마을을 선택한 이유

일에 치이고 사람에 지쳐, 잠깐 숨을 고를 공간이 필요했다. 복잡한 도시와는 거리를 두되, 너무 낯설지 않은 곳. 그리고 바다가 곁에 있었으면 했다. 태안은 그렇게 내 리스트에 오른 지역이었다. 동해보다 한적한 서해, 유명 관광지는 아니지만 살아보기엔 괜찮을 것 같은 감이 왔다.

서울에서 자차로 2시간 30분, 고속버스를 타면 3시간이면 닿는 거리. 태안은 충청남도 서쪽 해안 끝에 위치해 있고, 안면도와 만리포, 학암포 등 수많은 해수욕장을 품은 군 단위 지역이다. 사람에 따라선 조금 심심할 수 있지만,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다.

처음 도착한 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모래가 섞인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붉은 태양이 서해 수평선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동해의 해돋이는 봤어도 서해의 해넘이는 처음이었다. 이 노을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온 가치는 충분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나는 이제부터 이곳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태안에서 살아보기 – 숙소, 생활비, 장보기, 교통, 병원, 인터넷

내가 머문 곳은 태안읍 외곽의 단독 원룸. 부동산을 통해 보증금 10만 원, 월세 25만 원에 계약했다. 내부는 8평 정도로 아담했지만 냉장고, 세탁기, 와이파이, 전기레인지가 모두 갖춰져 있었고, 창문을 열면 작은 밭이 내려다보였다. 무엇보다 조용했다. 시계 소리와 새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생활비도 부담 없었다. 태안전통시장과 하나로마트를 병행하며 장을 봤고,

  • 계란 30개: 5,400원
  • 양파 1망: 2,000원
  • 국거리 한우 100g: 3,300원
  • 생선 (서해산 광어): 1마리 4,500원
  • 나물 반찬 3종: 5,000원

이런 식으로 식재료를 구매하면 일주일 식비가 3만 원 이하로 가능했다. 식당도 많진 않지만 현지 식당에서 백반, 칼국수, 회덮밥 등을 평균 7천~1만 원 사이에 먹을 수 있었다.

교통은 버스와 자전거를 병행했다. 읍내는 자전거만으로도 충분히 이동 가능했고, 먼 지역(만리포, 안면도)은 버스와 택시를 이용했다. 시내버스는 시간 간격이 길고 노선이 많진 않지만 미리 체크하면 활용할 수 있다. 택시는 콜택시 방식이며 대기시간은 10~20분. 주요 해수욕장이나 터미널 근처에서 이용하면 편하다.

병원 인프라는 기본적인 진료엔 무리가 없었다. 태안의료원을 중심으로 내과, 외과, 정형외과, 치과, 약국 등이 있고, 웬만한 감기나 통증 치료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응급 상황이나 정밀 검사 등은 서산 시내나 천안으로 이동해야 하므로 참고가 필요하다.

인터넷은 의외로 좋았다. 내가 살던 원룸은 KT 광랜이 설치되어 있었고, 속도는 평균 90~110Mbps 수준. 화상회의, 클라우드 문서작업, 영상 스트리밍 모두 문제없었다. 주요 카페들도 와이파이가 잘 되어 있었고, 데이터 수신도 안정적이었다.

 

바닷가에서 일하며 살기 – 디지털노마드 일상 루틴

나는 온라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한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대신 집중력이 필요한 직업이다. 도시에서는 늘 자극이 많아 산만했지만, 태안에서는 전혀 달랐다. 환경이 바뀌니 루틴도 바뀌었다.

하루는 아침 6시 30분에 시작됐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근처 솔숲길을 따라 바닷가까지 걸었다. 한 시간 정도 걷고 나면 머리가 맑아졌다. 돌아와서 아침을 만들어 먹고, 오전 9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주로 집에서 일했지만, 오후에는 카페로 나갔다.

추천하고 싶은 카페는 ‘카페 432’와 ‘학암포 아담한 커피’. 두 곳 모두 바다를 바로 볼 수 있고, 테이블 간격도 넓어 작업용 노트북을 펴기에 좋다. 와이파이 속도도 좋았고, 낮 시간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집중력 있게 3~4시간 작업을 하고 나면 하루의 대부분이 끝났다.

저녁엔 바다로 갔다. 만리포, 몽산포, 꽃지해변 등 다양한 해변이 차로 20~30분 거리였고,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내 루틴이 되었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가끔은 해루질 체험이나 갯벌 산책도 했다. 진흙이 발에 닿는 느낌, 조개 껍질 밟는 소리, 바닷물의 차가움.
이 모든 것이 나를 현실로 데려와 줬다.

한 달 후 남은 감정 – 노을, 갯벌, 느림이 준 선물

태안에서의 한 달은 예상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줬다. 처음엔 단순히 ‘쉬고 싶어서’ 떠난 것이었지만, 어느새 나는 나를 다시 관찰하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나는 늘 급했고, 성과 중심이었으며,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태안에서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비로소 나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갯벌 위를 걷고, 해질 무렵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시간은 잊을 수 없다. 그 느림과 고요함은 내가 잊고 지낸 감정과 질문들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내가 무의식 중에 참고만 있었던 건 아닐까?”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다시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무언가 바뀌기 시작했다.
태안은 편리하진 않다. 버스는 불편하고, 배달앱은 거의 쓸 수 없으며, 늦은 밤엔 갈 데가 없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곧 ‘내 삶의 템포’를 다시 조율하게 만든 것이다.

서울로 돌아온 지금, 나는 하루에 한 번은 창문을 열고 노을을 바라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도 나답게 살았는지.
그 물음 하나만으로, 태안에서의 한 달은 내 인생에 오랜 잔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