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에서의 한 달은 단순한 ‘지방 체험’이 아닌, 일과 휴식의 균형을 찾아가는 귀한 시간이었다. 숙소, 물가, 인터넷, 교통, 디지털노마드 업무 환경까지 실제로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이고 체감도 높은 정보만 담았다. 남해 바다와 숲이 품은 작지만 단단한 마을, 고흥의 조용한 한 달 살기 리포트.
왜 고흥이었을까 – 바다와 숲이 있는 조용한 마을을 찾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본다. “그냥 한 달만 아무 일도 없이, 조용한 데 가서 쉬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랬다. 서울에서 바쁘게 살아온 지난 몇 년 동안, 잠깐의 휴식도 죄책감처럼 느껴질 만큼 무언가에 쫓기며 살았다.
일에 치이고, 관계에 피로하고, 잠을 자도 피곤한 상태. 그 피로감이 임계점에 도달한 시점에서 ‘한 달 살기’라는 키워드가 내 삶에 들어왔다.
수많은 지역을 검색해봤다. 제주는 이미 관광지로 과밀했고, 강원도는 동계엔 너무 추웠다. 그러다 우연히 블로그에서 본 글 한 편이 나를 멈춰 세웠다.
“고흥은 아무것도 없어서 좋다. 그게 전부다.”
그 한 문장이 강하게 꽂혔다. 내가 지금 원하는 건 ‘있음’이 아니라 ‘없음’이구나.
그래서 고흥을 선택했다. 바다가 있고, 나무가 있고,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 동시에 인터넷은 되고, 카페도 몇 군데 있고, 너무 멀지 않은 생활권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KTX를 타고, 다시 고흥행 버스를 타니 총 5시간이 걸렸다. 장거리 여행이지만 그마저도 차분했다. 도시를 떠나 시야에 산과 들, 바다가 조금씩 늘어날수록 내 머리 속 생각들도 줄어드는 걸 느꼈다.
고흥은 낯설지만 편안한 느낌의 도시였다. 터미널에 내리자 작은 읍내가 펼쳐졌고, 사람들은 느긋했고, 공기는 차분했다. 처음 보는 곳인데도 “내가 여기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화감이 없었다.
이곳은 유명하지 않다. 그래서 더 살기 좋다. 조용한 장소는 혼자만 알고 싶어지는데, 고흥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여기서 나는 ‘잠깐 쉬고 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한 달을 사는 사람’으로 지내기로 했다.
고흥의 현실적인 생활환경 – 숙소, 장보기, 교통, 병원, 인터넷
내가 머문 곳은 고흥읍 외곽에 위치한 단독주택 원룸 형태의 숙소였다. 부동산 중개소를 통해 월세 20만 원, 보증금 10만 원에 계약했고, 가구·가전이 모두 갖춰진 상태였다. 조용한 마을길 옆이라 새벽엔 닭 울음소리, 낮엔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면 멀리 나무와 바다가 동시에 보였고, 밤에는 별이 쏟아졌다.
생활비는 서울보다 30% 이상 절약됐다.
고흥 전통시장과 하나로마트를 병행하며 장을 봤고,
- 계란 30개: 5,000원
- 전라도식 김치 1kg: 4,000원
- 상추, 깻잎 포함 쌈채소 세트: 2,000원
- 조기 2마리: 3,800원
- 마늘 반근: 2,500원
이 정도면 일주일 식재료가 충분했다.
외식은 보통 7,000,~9,000원대 백반, 국밥, 순대국 수준이었고, 횟집은 점심특선 기준 1만 3천 원이었다.
교통은 읍내 중심은 도보 또는 자전거로 해결했고, 멀리 나로도·풍양면 쪽은 버스를 탔다. 시내버스는 1시간 간격, 주요 해변이나 항구는 하루 몇 회만 다니므로 시간 체크가 필수였다. 택시는 콜 시스템을 사용했고, 10~15분 이내에 도착했다.
병원은 고흥종합병원과 내과·치과·한의원이 읍내에 분산되어 있어 기본 진료는 문제없다. 다만 응급 처치나 고급 진료는 순천이나 광주 이동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예상보다 좋았다. 광랜 기준 평균 속도 80~90Mbps였으며, 화상회의, 클라우드 문서작업 모두 안정적으로 가능했다.
시골에서 일하는 삶 – 디지털노마드의 루틴과 몰입 경험
나는 온라인 콘텐츠 제작과 글쓰기, 간단한 웹 운영을 병행하는 프리랜서다. 고흥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가장 걱정했던 건 ‘업무 집중도’였지만, 결과적으로 그 걱정은 기우였다. 고흥에서는 오히려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다.
아침 6시 기상 후, 마을 뒷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다. 조용한 나무숲과 짧은 오르막, 그리고 끝자락에서 만나는 바다 전망이 매일 아침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산책 후에는 직접 장 본 재료로 아침을 만들어 먹었다. 그 후 9시부터는 노트북을 열고 일에 집중했다.
집에서는 오전 작업, 오후에는 카페로 옮겼다. 추천하고 싶은 곳은 ‘고흥다방’, ‘카페 별다섯’이다. 둘 다 읍내 중심에 있고, 와이파이, 콘센트, 조용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어 원격 근무에 적합했다.
이곳에선 이상하게도 시간 압박 없이도 일을 밀도 있게 처리할 수 있었다. 작업 효율이 서울보다 더 높았고, 휴식과 몰입의 리듬이 자연스러웠다.
저녁에는 항구를 산책하거나 해변을 따라 걷는 시간을 가졌다. 고흥만, 녹동항, 남열해돋이해수욕장 등은 모두 차량으로 15~30분 내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조용한 물결 소리를 들으며 걷는 시간은 하루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주었다.
자연과 가까운 삶이 남긴 감정 – 한 달 후 변화된 나의 시선
고흥에서의 한 달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회복’에 가까웠다.
도시에서는 일하고 쉬는 것조차 ‘성과’를 내야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의미 있었다. 바람, 나무, 바다, 새 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지우지 않고 받아주었다.
한 달이 끝나갈 무렵, 나는 이전보다 한결 여유로운 표정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줄었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조금 더 믿게 되었다.
고흥은 편리한 도시가 아니다. 불편한 교통, 느린 속도, 제한된 상점.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나의 삶이 어떤 리듬을 원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나는 여전히 고흥에서 하던 루틴 일부를 유지하고 있다. 아침 산책, 느린 식사, 일정 시간 이후엔 일하지 않기. 그리고 주말이면 근교 바다를 찾아 조용히 걷는다.
고흥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 단지 휴식이 아닌 삶의 방향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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