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 실전 가이드

보성 한 달 살기 체험기 – 녹차 향기와 시골 바람 속에 머문 30일

sunny06301 2025. 7. 25. 18:30

전남 보성은 녹차밭과 고요한 마을이 공존하는 남도의 평화로운 시골이다. 직접 한 달간 보성에서 체류하며 경험한 숙소, 생활비, 교통, 인터넷 환경, 지역 주민 분위기, 프리랜서 작업 환경까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살아보기’에 초점을 맞춘 진짜 보성살이 체험을 기록한 후기이자 가이드.

 

 

보성 한 달 살기 체험기

보성을 선택한 이유 –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어느 날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점점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회의와 이메일, 배달음식과 새벽 퇴근이 일상이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어디 조용한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단순한 휴식이 아닌, 내 삶의 속도와 감각을 되찾기 위한 선택이었다.

전남 보성은 내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사람들이 녹차밭 사진을 올리는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고, 누군가 그곳에서 살아본 이야기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바로 그 점이 마음을 끌었다. 아직 덜 알려졌고, 그래서 더 조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검색해보니 보성은 인구 밀도가 낮고, 산과 논이 많은 전형적인 전라도 시골 마을이었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순천으로 내려간 후, 시외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하면 보성읍에 도착한다. 그날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 건 ‘조용함’이었다.
도시의 소음 대신 들리는 건 바람 소리, 새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트랙터 소리뿐이었다. 그날 저녁, 녹차밭 언덕을 오르며 보았던 노을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고요한 녹차마을에서의 생활 – 숙소, 장보기, 교통, 인터넷, 병원

보성에서의 한 달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소를 구하는 것이었다. 에어비앤비보다는 현지 부동산을 통해 단기 임대 가능한 원룸을 찾는 것이 훨씬 저렴했다. 나는 보성읍 외곽에 있는 작은 원룸을 월세 25만 원, 보증금 10만 원에 구했다. 냉장고, 세탁기, 인덕션, 인터넷까지 갖춰져 있었고, 무엇보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고, 마당 앞에는 감나무가 서 있었다.

생활비는 서울보다 훨씬 절약됐다. 보성 전통시장은 규모는 작지만 신선한 식재료가 가득했다.

  • 계란 30구: 5,000원
  • 보성녹차잎 한 묶음: 1,500원
  • 손두부 한 판: 3,000원
  • 애호박 1개: 800원
  • 돼지국밥 한 그릇: 7,000원

마트보다는 시장을 중심으로 생활했고, 직접 요리를 해 먹는 구조 덕분에 한 주 생활비가 3만 원도 안 들 때가 많았다.

교통은 불편하지만 예측 가능하다. 마을버스는 하루 3~5회 운영되고, 읍내까지는 자전거로 15분 정도 걸렸다. 보성은 자전거 타기에 좋은 평지 지역이 많다. 전기 자전거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택시는 콜택시 형태로 운영되며, 호출 시 평균 10분에서 20분 사이로 도착했다.

의료 인프라는 기본적인 진료에는 문제가 없다. 읍내에 보성군 보건소, 내과, 치과, 한의원 등이 분포되어 있고, 약국도 충분히 있다. 다만, 응급 수술이나 CT 촬영 등 고급 진료는 순천이나 광주까지 나가야 한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인터넷 환경은 예상보다 안정적이었다. 내가 묵었던 원룸은 KT 광랜이 설치되어 있었고, 업로드/다운로드 모두 90Mbps 수준이었다. 줌 회의, 유튜브 업로드, 구글 문서 작업 등 원격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보성읍 내 몇몇 카페에서도 와이파이가 제공되어 외부 작업도 가능했다.

 

느린 호흡 속 일과 삶 – 프리랜서로 산 보성의 하루들

나는 주로 콘텐츠 기획, 블로그 글쓰기, 영상 대본 작성을 하는 프리랜서다. 서울에서는 알림과 일정 사이에서 일하는 기계처럼 살았지만, 보성에서는 하루의 구조부터 달라졌다.
아침 7시,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한 것은 마당 앞에서 녹차 한 잔을 끓이는 것이었다.
직접 산 녹차잎으로 우린 찻물은 향이 깊었고, 그 향기만으로도 하루를 부드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산책로는 숙소 근처 농로길이었다. 논 사이 길을 따라 30분 정도 걷고 돌아오면 땀은 살짝 배고, 머리는 맑아졌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집에서 업무에 집중했다.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쓰는 시간은 조용하고 몰입감이 있었다. 알림도 없고, 약속도 없었기에 진짜 나만의 시간이 확보되었다.

점심은 직접 요리하거나 읍내 식당을 이용했다. 오후엔 카페 ‘초록달’이나 ‘다정다감’에 가서 글을 계속 썼고, 4시쯤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작업을 마쳤다. 하루 6~8시간의 업무가 고통이 아니라 치유처럼 느껴졌다.

저녁엔 작은 찻잔에 다시 차를 우려 마시며, 일기를 썼다. 그 시간엔 전혀 ‘생산성’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고, 대신 감정과 사색이 자리를 채웠다. 느린 리듬 속에서 나는 일과 삶의 경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연습을 했다.

 

내 안의 변화 – 차향과 함께 정리된 삶의 우선순위

보성에서의 한 달은 단순히 ‘시골살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순서를 되돌리는 시간이었다.
일, 돈, 일정보다 내 감정, 몸, 속도를 먼저 챙기는 방법을 배웠고, 그것은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감각이었다.

매일 아침 녹차를 우려 마시고, 저녁마다 별을 바라보는 삶은 단조로웠지만 풍요로웠다.
전자기기를 덜 보게 되었고, 감정을 외면하지 않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도시에서 당연했던 ‘바쁨’은, 보성에서는 결코 기본값이 아니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배달 앱이 작동하지 않는 지역이 많았고, 밤늦게는 대중교통이 사실상 멈춘다. 문화시설도 거의 없고, 젊은 세대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 불편함조차도 내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도, 나는 아침 녹차 루틴과 일기 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보성에서 얻은 가장 큰 변화는 무조건 더 빨리,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제는 가끔 속도를 늦춰도 된다는 걸 안다. 그걸 가르쳐준 게 바로 보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