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독특한 알바 경험

재래시장 배달 알바 썰 – 손님보다 상인이 더 무서웠던 이유

sunny06301 2025. 9. 24. 23:48

좁은 골목에서 시작된 인생 첫 배달 알바

대학생 시절, 방학 동안 짧게라도 돈을 벌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배달 알바를 하게 됐다.
마트나 프랜차이즈보다
현금을 바로바로 받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고,
한두 달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일 자체는 단순했다.
시장 내 각 가게에서 손님이 주문한 물건을
리어카에 싣고, 근처 아파트나 주택가로 배달해주는 일이었다.

시장 안은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가게마다 단골도 많고 상인들끼리도 유대가 깊어
마치 마을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분위기일 줄 알았고,
그 안에서 일하게 된 것이 나름 의미 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자,
나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거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손님보다 무서운 건 배달을 시키는 상인들이었고,
그들과의 관계가 이 알바의 난이도를 결정했다.

독특한알바경험재래시장알바26

무서운 건 손님이 아니라 상인이었다

내가 맡은 배달은 단순한 심부름이 아니었다.
물건을 빠르게 옮기는 건 기본이고,
상인의 말 한마디에 즉각 반응해야 했다.
특히 성격이 급한 상인일수록
“야, 지금 저기 먼저 갖다 줘!”
“이건 박스 다치면 안 돼, 조심해서!” 같은 말이
항상 명령처럼 쏟아졌다.

문제는 그 말투나 태도에 감정이 섞여 있다는 점이었다.
일이 바쁘거나 손님이 몰릴 때는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움직여도
무시당하거나 괜히 짜증을 받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물건이 흘러내려서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이게 뭐 하는 거야, 손님 기다리잖아!”라는
호통이 매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가장 힘들었던 건,
그들이 나를 직원이 아닌 ‘하급 인력’처럼 대한다는 느낌이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존중은 없었고,
고마움보단 당연하다는 눈빛이 더 많았다.
물건을 받는 손님보다
오히려 물건을 주는 상인의 태도에서
더 많은 긴장과 눈치를 느껴야 했다.

무리한 요구와 감정노동의 연속

어떤 상인은
한꺼번에 3~4건의 배달을 동시에 시키곤 했다.
당연히 각기 다른 위치였고,
거리도 꽤 있었지만
“다 들고 가도 되잖아, 시간 없어”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걸 떠안아야 했다.

배달 중간에 전화가 오면
“지금 어디야? 왜 아직도 안 갔어?”라고 다그치기 일쑤였고,
심지어 어떤 날은
내가 모르는 곳을 헤매다가
배달이 늦어지자 직접 가게로 찾아와서
“진짜 이래서 애들 못 쓰겠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일을 못한 게 아니라
처음 가보는 동네라 길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던 건데도
이해보다는 평가와 비난이 먼저였다.
그 순간,
나는 이 일이 단순히 몸만 쓰는 게 아니라
감정을 매일 갈아넣어야 하는 노동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래서 일이 끝난 뒤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다음 날 그 상인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작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익힌 생존법과 나만의 태도

계속 그렇게 휘둘리기만 할 순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배달 지시를 받을 때
정확히 몇 건이고 어느 순서로 갈지를
메모장에 적어두고 상인에게 다시 확인을 요청했다.
이 과정을 통해 실수도 줄었고,
상인도 내 태도를 조금씩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또한, 상인의 기분이나 말투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말투는 최대한 단정하게 유지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대신 배달 품질로 인정을 받으려 했다.
무조건 빠르게 처리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실수 없이 마무리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배달이
결국 상인들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었다.

점점 몇몇 상인은
나를 다른 알바생과 비교하며
“얘는 정확하잖아”라고 말해주기도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상인이 먼저 “고생 많지?”라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날은
내가 배달 중간에 길을 헤매고 있자
한 상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
“천천히 와, 급한 거 아니야”라고 말해줬다.
그 순간 나는
‘나도 존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비로소 느꼈다.

물론 모든 상인이 그렇게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태도도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작은 태도 변화가
긴장을 줄이고,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거친 공간 속에서도 배운 게 있었다

재래시장 배달 알바는
체력보다 멘탈이 더 필요한 일이었다.
손님의 미소보다
상인의 눈치를 더 많이 봐야 했고,
단순한 노동이라기보단
사람 사이의 심리전 같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지킬 태도와 선을 정하면서
조금씩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었고,
그 경험은 단순한 알바 이상의 의미로 남았다.
누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내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
그건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지금은 시장을 지나칠 때마다
그때 그 골목과 상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는 참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더 유연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은 나에게 ‘어른들의 세계’를 아주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사회는 꼭 정장 입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시장이라는 작은 생태계 안에서도
명확한 위계와 관계, 긴장과 생존이 있다는 걸
나는 그 알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나를 위해 무조건 친절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 나를 존중하는 태도를 지켜야 했다.
그 작은 골목길을 다니며,
나는 조금씩 사람과 거리 두는 법,
그리고 때로는 거절하거나 멈추는 용기를 익혔다.
그게 결국,
이후 어떤 직장을 가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준
‘내 속의 기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