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할 줄 알았던 새벽은 나를 시험했다
새벽 알바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주간보다 시급이 높았고,
사람이 적으니 덜 피곤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시기엔 공부와 병행해야 했기에
밤에 근무하고 낮에 시간을 쓰는 루틴이
오히려 나한테 더 맞는다고 판단했다.
처음 근무지를 배정받고,
새벽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혼자 근무한다는 사실에
긴장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기분도 들었다.
매장 안에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정리도 하고, 계산도 하면서
조용히 일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첫 날,
그 ‘조용함’은 단순한 평화가 아니라
긴장과 적막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스트레스라는 걸 곧 깨달았다.
새벽 시간은 생각보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했고,
그 안에서 혼자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 했다.
한적한 거리, 예측할 수 없는 방문객
새벽의 편의점은
낮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그 소수의 손님이 훨씬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술에 취한 사람,
급하게 담배만 사러 오는 사람,
말없이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조용한 매장에 하나둘 들어설 때마다
공기가 묘하게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기억나는 건
취객이 들어와 다짜고짜 “물 있어요?”라고 소리치고,
답변이 맘에 안 들었는지
물건을 집어 던지고 나간 일이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이 공간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누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져야 했다.
그 후로 나는
가장 먼저 근무 중 비상벨의 위치를 익혔고,
화장실 옆에 핸드폰을 두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새벽은 그냥 ‘한가한 시간’이 아니라
조용한 불안이 도사리는 시간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감정의 변화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시간,
매장 안에 나 혼자 있는 그 순간은
때론 편안했고, 때론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라디오 소리만 흘러나오는 공간에서
잡생각이 많아지면
별일도 아닌데 불안이 커졌다.
잠깐 고개를 떨구었다가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도 종종 있었다.
특히 손님이 말없이 상품을 들고 다가올 때면
괜히 긴장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평범한 손님이지만,
내가 전적으로 ‘예상’에 의지해야 하는 구조가
마음속에 조용한 압박으로 쌓였다.
처음엔 이 고요함이 감성적으로 느껴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건 혼자 감당해야 할 ‘공간 전체의 책임’이라는 무게였다.
매장 문이 열리는 소리,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조차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다.
그런 감정들을 스스로 다독이는 방법을
익히지 않으면
이 일은 오래 버티기 쉽지 않다고 느꼈다.
조용한 알바 속에서 익힌 생존 기술
혼자 있는 근무가 반복되면서
나는 매뉴얼에 없는 ‘나만의 생존 기술’들을 익혔다.
우선 계산대 뒤쪽에 항상 빠르게 숨을 수 있는 길을 확보해뒀고,
매장 구석에 위치한 사각지대를
CCTV 화면으로 자주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무조건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가능성을 고려하는’ 차원의 방어심이었다.
예기치 못한 손님의 행동이나,
계산 중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
모든 상품을 더블체크하고
특히 고액권 거래엔 더욱 집중했다.
또한,
근무 중 졸음을 막기 위해
계속 작은 동선을 만들며 움직이기도 했다.
매대를 닦거나, 상품 진열을 정리하면서
신체를 계속 깨어 있도록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나는 자신만의 알림 루틴도 만들었다.
1시간마다 메신저로 본인 위치와 상황을
지인에게 간단히 공유하거나,
이상 상황이 생기면 알림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모든 걸 견디는 것보다는
적절한 안전망을 확보하는 게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됐다.
이런 루틴들은 단순히 일 잘하는 알바를 넘어서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편의점 알바는 생각보다 감정과 체력을 동시에 쓰는 일이었고,
새벽 근무는 특히 그 강도가 더 높았다.
나만의 리듬을 만든 새벽의 시간들
처음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새벽 알바였지만,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한 사람으로서 훨씬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혼자 근무하며 생긴 불안과 긴장,
그 안에서 만든 나만의 대응 방식은
이후 어떤 상황에서도 내 중심을 지킬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누군가 편의점 알바를 ‘쉬운 일’이라고 말하면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을 것이다.
특히 새벽 시간대는
육체적인 피로를 넘어
정신적인 안정과 책임감이 동시에 요구되는 시간이었다.
그 경험 덕분에
지금 나는 어떤 공간에서든
주어진 역할을 책임지고,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새벽 알바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고요한 혼자만의 전쟁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책임과 판단, 행동의 모든 무게를 홀로 짊어졌다는 경험은
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았다.
그 이후 나는 어떤 일을 맡더라도
스스로를 신뢰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법을 알고 있다.
또 하나 분명한 변화는,
이후 어디서든 혼자 일하는 상황이 찾아와도
예전처럼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때의 긴장과 불안을 감정적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이제는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준비할 줄 아는 습관이 생겼다.
그건 단순히 알바를 오래 해서 익숙해진 게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고 스스로를 이끄는 방법을
새벽이라는 시간 속에서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었다.
그 밤들을 견뎌낸 나는,
이제 조금 더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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