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 아르바이트 후기 – 책보다 사람이 더 따뜻했던 공간

sunny06301 2025. 9. 29. 23:56

동네 서점에서 일해본다는 것의 의미

대학교 2학년 때,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작은 동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만 이용하던 나에게 이곳은 낯설고 어색한 공간이었다.
서가도 좁고 책 종류도 많지 않았지만, 그곳엔 묘한 따뜻함이 있었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주인 아저씨는 "우리는 책도 팔지만 이야기도 나누는 곳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인상 깊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 경험은 내가 ‘책’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일이라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사람과 공간에 마음을 담는 일이라는 것을 그곳에서 배웠다.
동네 서점에서의 아르바이트는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조용한 사람들과의 교감이 있었던 진짜 경험이었다.

책을 정리하며 배운 ‘취향’이라는 감각

동네 서점의 가장 큰 특징은 단골 손님이 많다는 점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오는 초등학생 남매,
항상 조용히 시집 코너를 살피는 60대 여성,
커피 한 잔을 들고 와서 인문학 코너에서 한 시간씩 머무는 청년.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인사와 짧은 인사말만으로도 서로를 기억하게 되었다.

한 번은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손님이
슬며시 와서 "지난번에 추천해준 시집, 참 좋았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그 시집은 내가 우연히 읽고 꽂아둔 책이었고,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괜히 그날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파는 일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
작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도, 누군가의 독서에 조용히 관여할 수 있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점 뿌듯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공간은 점점 ‘일하는 곳’이 아니라
‘익숙한 사람들과 매일을 살아가는 장소’로 바뀌어갔다.
도서관처럼 조용하지만, 그 속엔 수많은 감정이 오갔고,
나는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취향을 조심스럽게 헤아리고,
그에 맞는 책을 자연스럽게 건네는 경험은
책장 뒤에서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술을 매일 조금씩 익혀갔다.

단골 손님들과 나눈 말 없는 교감

한 번은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손님이
슬며시 와서 "지난번에 추천해준 시집, 참 좋았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그 시집은 내가 우연히 읽고 꽂아둔 책이었고,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괜히 그날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파는 일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
작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점점 ‘일하는 곳’이 아니라
‘익숙한 사람들과 매일을 살아가는 장소’로 바뀌어갔다.
도서관처럼 조용하지만, 그 속엔 수많은 감정이 오갔고,
나는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팔지 않고 ‘기록’을 남기는 공간

이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작은 문화공간 역할도 하고 있었다.
가끔은 독립출판 작가가 와서 낭독회를 열고,
주말에는 독서 모임이 열려 좁은 서점 안에 의자가 가득 차곤 했다.
그날은 나는 직원이 아니라, 한 명의 청중이자 참여자가 되었다.

한 번은 그림책 작가가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열었는데,
서점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그걸 바라보며 나는 ‘책은 혼자 읽는 것이지만,
함께할 때 더 많은 감정을 준다’는 걸 느꼈다.
그 공간에서 일한 날들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책과 사람이 만나 역사가 되는 현장이었다.

책은 판매되지만, 서점의 분위기와 기억은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나는 책을 팔았지만, 더 많은 건 ‘기록’과 ‘기억’을 나눴다.
이 경험 이후, 책을 고를 때 단지 가격이나 제목만 보지 않고,
그 책을 읽을 사람과 순간까지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문화 프로그램들이 열릴 때마다
나는 서점이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는 걸 더 실감했다.
책장과 책상 사이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처음 본 사람들끼리 감상을 공유하며 연결되었다.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에
작지만 의미 있는 책임감을 느꼈다.
책을 파는 일이 이렇게 따뜻한 일일 수 있다는 걸,
그곳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동네 서점이 내게 남긴 것들

동네 서점에서의 아르바이트는
대형 서점에서 느낄 수 없는 ‘인간적인 온기’를 전해줬다.
나는 단지 책을 팔기 위해 일한 게 아니라,
그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원이었다.
책을 정리하는 손길, 조용한 대화,
매주 찾아오는 단골의 눈빛 하나하나가
나를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지금은 그 서점이 문을 닫았지만,
나는 그 공간에서 배운 태도와 시선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책은 정보지만, 책을 둘러싼 공간은 경험이라는 걸
몸으로 배웠기에, 지금도 서점에 갈 땐 먼저 향기와 분위기를 본다.

서점이라는 공간은 작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쌓이고 있었다.
손님들이 어떤 책을 들여다보는지,
책 사이사이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그 작은 움직임들 속에 삶의 결이 있었다.
내가 본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마을의 정서와 사람이 모이는 안식처 같았다.

동네 서점은 작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사람과 책, 그리고 삶을 연결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랫동안 내 마음의 서재 속에 남아 있다.
책보다 더 깊이 각인된 건,
그 공간에서 함께 나눈 시간과 사람들의 숨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