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조지타운 한 달 살기 – 다문화 거리와 느린 바다가 만든 일상
페낭의 조지타운에 도착한 첫날, 공항을 나서자마자 공기가 달랐다. 습도가 높아 부드러운 바람이 몸에 감기듯 스쳤고, 길가의 팜트리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택시가 시내로 들어서자 창밖으로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나타났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 오래된 사원,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셔터와 붉은 기와 지붕들이 이어졌다.
숙소 근처에 도착했을 때, 골목에서는 이미 다양한 언어가 오가고 있었다. 중국어로 흥정을 하는 상인, 영어로 주문을 받는 카페 직원,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아잔(이슬람 기도 소리)이 도시의 풍경 속에 겹겹이 얹혀 있었다. 첫 아침은 이 소리와 냄새, 색감으로 가득 찼다.
조지타운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만 보존한 곳이 아니다. 현재와 과거, 서양과 동양이 한 골목 안에서 공존하는 살아 있는 도시다. 여기서 한 달을 살아본다는 건, 매일 조금씩 변하는 골목의 표정을 기록하고, 느린 바다와 함께 하루의 흐름을 맞춰가는 경험이었다.
왜 조지타운이었을까 – 다문화 도시의 매력
조지타운은 하루에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을 준다. 아침이 되면 골목을 따라 난 향신료 가게에서 인도풍 커리 냄새가 진하게 퍼지고, 조금만 걸으면 붉은 등이 매달린 차이나타운의 작은 가게들이 문을 연다. 점심 무렵이면 시장 주변에서 말레이 음식 노점이 늘어서고, 저녁이 되면 바닷가 근처에서 해산물 구이와 사테 냄새가 거리를 채운다.
이 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런 ‘다문화의 일상’이었다. 쿠알라룸푸르처럼 번화한 대도시가 아니라, 느린 걸음으로 걸을 수 있는 크기의 도시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한 걸음만 옮겨도 분위기가 변하는 골목들은 산책 자체를 여행처럼 느끼게 했다.
조지타운의 시간은 바다와 함께 흐른다. 해가 뜨면 항구의 배가 움직이고, 점심이면 바다 위의 햇빛이 건물 벽에 반사된다. 오후가 되면 바닷바람이 시장의 향신료와 함께 골목으로 스며든다. 밤에는 해안가 벤치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풍경 속에서 한 달을 보낸다는 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도시의 호흡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이었다.
조지타운의 생활 환경 – 숙소, 생활비, 교통, 병원, 인터넷
숙소는 올드타운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1베드룸 아파트였다. 부엌에는 기본 조리도구와 전자레인지, 인덕션이 있었고, 거실 창문 너머로는 파스텔톤 건물과 벽화가 보였다. 밤이 되면 아래 카페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생활비는 합리적이었다.
- 나시르막: 5링깃(약 1,500원)
- 락사: 7링깃(약 2,100원)
- 카페 커피: 4링깃(약 1,200원)
- 신선한 망고: 6링깃(약 1,800원)
페낭 중앙시장은 생활의 중심이었다. 새벽 6시, 시장 문이 열리면 해산물, 채소, 향신료가 진열되고,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가격을 몰라 우왕좌왕했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단골 상인이 생겨 흥정 없이도 좋은 재료를 얻었다.
교통은 버스, 도보, 오토바이를 번갈아 이용했다. 시내 이동은 주로 도보로 충분했고, 섬 외곽으로 나갈 때는 오토바이를 빌렸다. 병원은 페낭 종합병원과 사설 클리닉을 이용했는데, 영어 진료가 가능해 큰 불편이 없었다. 인터넷은 숙소 와이파이가 안정적이었고, 카페 와이파이 속도도 원격 업무에 충분했다.
바다 도시에서 일하며 살기 – 디지털노마드 루틴
아침 6시 반이면 바닷가를 걸었다. 해가 뜨기 전 하늘은 보라색과 분홍색이 섞였고, 바닷바람이 건물 사이를 스쳤다. 골목은 아직 조용했지만, 간간이 오토바이가 지나가며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숙소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창문을 열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항구의 경적 소리가 들렸다. 오전에는 기획안 작성, 원고 정리, 자료 조사 등 집중도가 필요한 일을 했다.
오후에는 카페로 이동했다. ‘China House’는 벽마다 예술작품이 걸려 있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좋았고, ‘The Mugshot Cafe’는 넓은 테이블과 안정적인 와이파이 덕분에 작업하기에 최적이었다. 오후 3~4시는 바닷가 산책을 하거나, 현지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저녁에는 해가 지는 바닷가를 보며 하루를 정리했다. 해변 벤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이 하루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한 달이 만든 변화 – 조지타운 살이가 남긴 가치
조지타운에서 한 달을 보내며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속도의 재조정이었다. 한국에서는 일정과 업무를 촘촘하게 채우는 것이 습관이었다. 하지만 조지타운에서는 여유를 생활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골목의 벽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바닷가에서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급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 후에도 일정에 여유 시간을 남겨두는 습관이 자리잡았다. 주말이면 바다나 강변으로 산책을 가고, 하루 중 일부 시간을 의도적으로 비워둔다. 조지타운에서 배운 여유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조지타운에서 보낸 한 달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생활을 다시 설계하는 시간이었다. 다문화 거리가 보여준 다양성, 바다가 만든 여유, 그리고 매일 반복되지만 변하는 골목의 표정이 하루를 채웠다. 이 경험은 지금도 내 일상 속에서 작동한다. 조지타운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내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