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외곽 호이안 한 달 살기 – 강과 올드타운, 골목 속 일상
호이안은 베트남 다낭에서 남쪽으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소도시로, 한때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던 역사를 품고 있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올드타운과 강변의 노란 건물, 매일 밤을 밝히는 등불로 유명하다. 하지만 단기 여행으로는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기 어렵다. 낮에는 관광객으로 붐비는 거리가 아침과 밤이 되면 조용해지고, 골목의 상점과 시장, 강변을 걷는 주민들의 일상이 드러난다. 다낭보다 훨씬 느린 생활 속도, 저렴한 생활비, 외국인에게도 편리한 환경 덕분에 장기 체류지로서의 가치가 높다. 이번 글에서는 호이안에서 한 달간 실제로 생활하며 경험한 숙소, 생활비, 교통, 병원, 인터넷, 업무 루틴, 그리고 한 달이 남긴 변화를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왜 호이안이었을까 – 다낭 외곽 소도시의 매력
호이안은 짧게 머무르면 관광지의 화려함이 먼저 보인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등불과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강 위를 오가는 작은 배, 밤이 되면 불을 밝히는 등불 거리. 하지만 한 달을 살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숨겨진 공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호이안을 선택한 이유는 도시의 느린 흐름이었다. 다낭에서는 해변과 리조트 주변에 관광객이 많고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호이안은 강변에 앉아 있으면 하루가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노 젓는 배의 물결, 강변에서 바구니를 손질하는 어부, 가게 앞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 할머니까지. 모두가 서두르지 않는다.
호이안의 밤은 또 다른 매력을 준다. 등불 거리가 유명하지만, 장기 체류를 하면 관광객이 없는 한적한 시간대를 즐길 수 있다. 늦은 밤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면, 강에 비친 등불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이런 시간은 여행으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호이안의 진짜 매력이다.
호이안은 다낭과의 거리도 장점이다. 차로 40분이면 다낭의 대형 마트, 병원, 쇼핑센터를 이용할 수 있어 생활 편의성이 높다. 이런 점들이 한 달 살기에 호이안을 선택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였다.
호이안의 생활 환경 – 숙소, 생활비, 교통, 병원, 인터넷
호이안에서 머문 숙소는 올드타운에서 자전거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2층 로컬 하우스였다. 1층은 주인 가족이 살고, 2층에는 장기 체류자를 위한 원룸형 객실이 있었다. 방 안에는 에어컨, 주방, 세탁기, 와이파이, 기본 조리도구까지 갖춰져 있었다. 월세는 약 300달러였는데, 장기 계약이었기에 주인 가족이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맞은편 골목의 작은 강이 보였고, 배를 타고 물건을 나르는 주민들을 매일 마주할 수 있었다.
생활비는 한국과 비교하면 훨씬 저렴했다.
- 쌀국수 한 그릇: 40,000동(약 2,000원)
- 반미 한 개: 25,000동(약 1,300원)
- 카페 아이스커피: 20,000동(약 1,000원)
- 신선한 과일 한 봉지: 30,000동(약 1,500원)
호이안 중앙시장은 장보기의 중심이었다. 새벽 5시부터 시장이 열리면 상인들이 바구니 가득 해산물, 채소, 허브를 진열했다. 이른 아침의 시장은 활기와 소음으로 가득했지만, 9시쯤이 되면 차분해졌다. 처음에는 가격을 몰라 흥정이 서툴렀지만, 2주쯤 지나자 단골 가게가 생겨서 흥정 없이도 좋은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교통은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필수였다. 자전거는 골목길과 올드타운을 오가는 데 적합했고, 다낭이나 인근 해변을 갈 때는 오토바이를 빌렸다. 한 달 기준 오토바이 렌트비는 약 80달러였다. 병원은 다낭 국제병원과 호이안의 개인 클리닉을 병행했다. 인터넷은 숙소 와이파이가 안정적이었고, 대부분의 카페 와이파이도 업무를 하기에 충분히 빠르고 안정적이었다.
강변 도시에서 일하며 살기 – 디지털노마드 루틴
호이안에서의 하루는 고요하게 시작됐다. 아침 6시 반이면 강변 산책로를 걸으며 하루를 열었다. 해가 뜨기 전 강 위에 얇게 깔린 안개와 조용히 떠 있는 작은 배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하루의 속도를 천천히 만들어줬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창문을 열면 강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와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아침의 시작을 알렸다. 오전은 기획안 작성, 콘텐츠 원고, 자료 조사 등 집중이 필요한 업무에 시간을 썼다.
오후에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추천 카페는 올드타운의 ‘Reaching Out Tea House’와 강변의 ‘Hoi An Roastery’였다. Reaching Out Tea House는 조용히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고, Hoi An Roastery는 넓은 테이블과 빠른 와이파이 덕분에 업무를 진행하기에 최적이었다. 카페에서 3~4시간 작업을 이어간 후, 늦은 오후에는 강변을 산책하거나 해변으로 향했다.
업무가 끝나면 호이안의 해변이나 올드타운 골목길을 천천히 걷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관광객이 적은 시간대의 골목은 한 달 살기 중 가장 편안한 순간이었다.
한 달이 만든 변화 – 호이안살이가 남긴 가치
호이안에서의 한 달은 나의 생활 패턴과 사고 방식을 모두 바꿔놓았다. 한국에서는 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계획을 빽빽하게 채웠다. 하루 일정을 꽉 채우지 않으면 불안했고, 잠시라도 쉬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호이안에서는 계획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강변을 걷는 30분, 골목 카페에서 책을 읽는 한 시간이 오히려 하루를 안정시키는 중심이 되었다.
이 시간들은 단순히 느긋한 여유가 아니었다. 강물의 흐름을 따라 생각이 차분히 정리됐고, 한국에서 놓치고 있던 문제의 핵심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호이안의 생활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 효율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호이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저녁의 강변 풍경이었다. 매일 저녁 강 위에는 노을빛이 천천히 번지고, 바람에 등불이 흔들렸다. 이 장면을 반복해서 보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시간 동안은 업무, 돈, 계획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마음의 여유는 귀국 후에도 일상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나는 호이안에서 익힌 생활 방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루 일정에 최소한의 여유 시간을 확보하고, 주말이면 강이나 호수 같은 물가로 나가 산책을 한다. 호이안에서 배운 여유는 단순한 여행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생활에 녹아든 생활 습관이 되었다.
호이안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그곳이 내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호이안에서의 한 달은 나의 생활 속도를 다시 설계하게 했고, 앞으로 어떤 도시를 살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을 남겨주었다. 그 기준은 지금도 내 일상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