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한 달 살기 후기 – 정원과 호수가 어우러진 도시에서의 한 달
서울에서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업무와 일정이 쌓이고, 하루가 끝나도 쉬었다는 느낌이 없었다. 나는 느리지만 단단한 리듬을 가진 도시로 한 달간 떠나기로 했다. 선택한 곳은 순천이었다. 순천은 정원과 호수, 그리고 차분한 도심이 공존하는 남도의 도시다. 유명한 순천만 습지와 국가정원만이 아니라, 실제 주민들이 사는 동네의 일상 속에서 이 도시의 매력을 느끼고 싶었다. 이 글은 순천에서 한 달간 실제로 생활하며 경험한 숙소, 생활비, 교통, 병원, 인터넷, 그리고 업무 루틴까지 기록한 체험기다.
왜 순천이었을까 – 느린 도시의 매력
순천은 남도의 도시들 중에서도 ‘속도를 늦추는 법’을 가장 잘 아는 도시다. 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 덕분에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내가 순천을 선택한 이유는 그 뒤에 숨겨진 일상의 리듬 때문이다. 여행자로 짧게 스쳐 지나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주민들의 생활, 그리고 그 안에 묻어 있는 여유를 한 달 동안 느껴보고 싶었다.
순천의 매력은 균형에 있다. 도심 속에서도 자연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시, 또 자연을 품고 있으면서도 필요한 생활 인프라를 갖춘 도시다. 아침에 정원길을 걸어도 불편함이 없고, 저녁에 장을 보러 나가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모두 생활권 안에 있다. 이런 구조는 장기 체류자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특히 순천은 ‘도시의 복잡함이 불필요한 곳’이다. 광주와 여수 등 주요 도시로의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호수와 습지, 조용한 마을이 이어진다. 한 달 살기를 위해 너무 멀리 떠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던 내게, 순천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이다. 순천 사람들은 대체로 차분하고 친절하다. 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카페에서 주문을 할 때도, 불필요하게 서두르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 이런 대화의 템포,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나는 이 도시가 가진 ‘속도의 여유’를 느꼈다. 한 달을 이곳에서 살아본다면 단순히 여행으로는 느낄 수 없는 순천의 속살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천의 생활 환경 – 숙소, 생활비, 교통, 병원, 인터넷
내가 머문 숙소는 연향동 외곽의 주택형 원룸이었다. 월세 28만 원, 보증금 10만 원으로 계약했고, 가구와 가전이 갖춰져 있어 바로 생활이 가능했다. 창밖으로는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였고, 이른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어올라 하루를 차분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숙소 앞 마을은 아침이면 시장으로 향하는 주민들로 북적였고, 저녁이면 한적한 풍경으로 돌아갔다.
생활비는 전남 지역답게 합리적이었다.
- 계란 30개: 5,000원
- 쌈 채소 세트: 2,500원
- 국거리 소고기 100g: 3,400원
- 전라도식 김치 1kg: 4,000원
- 제철 생선(숭어·우럭): 마리당 3,500~5,000원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면 신선하고 저렴했다. 특히 어시장에서는 바로 잡은 해산물을 손질해주기도 해, 회나 탕 요리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다. 외식은 백반, 국밥이 8,000원대, 한정식은 1만 원대 초중반으로 품질 대비 가격이 뛰어났다.
교통은 버스, 자전거, 도보를 병행했다. 버스는 주요 생활권과 관광지를 연결했고,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어 자동차 없이도 생활이 가능했다. 순천은 규모가 크지 않아 이동이 불편하지 않았다. 택시는 호출 후 10분 내 도착했고, 기본 요금은 4,800원이었다.
병원은 순천의료원, 개인 의원, 한의원이 있어 기본 진료가 가능했고, 대형 검사는 광주로 이동하면 됐다.
인터넷은 숙소에 광랜이 설치되어 다운로드 속도 90~95Mbps를 유지했다. 화상회의, 대용량 파일 업로드도 안정적이어서 원격 업무에 불편함이 없었다.
정원 도시에서 일하며 살기 – 디지털노마드 루틴
순천에서의 한 달은 업무 효율과 생활 균형을 조정하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프리랜서로 콘텐츠 제작과 온라인 마케팅을 병행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작업 환경이 필요했다.
아침은 보통 6시 반에 시작됐다. 호수공원을 따라 산책하며 하루를 열었는데, 이른 아침의 공원은 고요했다. 안개 속 물결이 잔잔하게 움직이는 모습, 물가 근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도시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이런 풍경은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마음을 느리게 만들어 주었다.
업무는 오전 9시부터 시작했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기획안 작성과 콘텐츠 제작을 진행했고, 오후에는 카페나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추천 작업 공간은 ‘정원커피’와 ‘순천북카페’다. 두 곳 모두 조용하고 좌석 간격이 넓어 집중에 좋았다. 카페 창문으로 보이는 정원과 거리가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업무는 하루 평균 5~6시간으로 제한했다. 남은 시간에는 순천만 습지의 갈대밭을 걸으며 하루를 정리하거나, 국가정원 산책로를 돌았다. 이런 여유가 업무 아이디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실제로 순천에서 작성한 기획안의 완성도가 높았다. 도시에서였다면 몰입이 어렵고 자꾸 마감에 쫓겼겠지만, 순천에서는 차분한 속도가 오히려 효율을 높였다.
한 달이 만든 변화 – 순천살이가 남긴 가치
순천에서 한 달을 살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하루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도시에서의 나는 항상 시간을 관리하고, 모든 순간을 효율적으로 채우려 했다. 그러나 순천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 ‘비워둔 시간’이 주는 가치를 알려주었다.
아침마다 호수 위로 피어오르는 안개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마음을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국가정원의 길을 걸으며 아무런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내는 순간,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됐다. 이런 여유가 쌓이면서 오히려 일의 효율이 높아지고, 생활이 안정되었다.
순천은 도시와 자연이 균형을 이루는 드문 도시다. 필요한 인프라가 모두 갖춰져 있으면서도, 조금만 걸으면 조용한 공원과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빠르게 살아야만 성과가 나온다’는 생각을 버리고, 적절한 속도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순천에서 배운 생활 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루 일정에는 반드시 여백을 두고, 주말이면 근처 공원이나 호수로 산책을 나간다. 순천에서의 한 달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내 생활의 기준을 바꾸어놓은 시간이 되었다. 다시 한 달 살기를 하게 된다면 주저 없이 순천을 선택할 것이다. 그곳은 내게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삶을 다시 조율해준 장소’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