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체험기 – 관광지 밖에서 만난 진짜 제주 생활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하루는 알람 소리에 쫓겨 시작하고, 업무와 사람들 속에서 쉴 틈이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잠시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행이 아니라, 다른 땅에서 살아보는 경험. 그 기준으로 제주가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찾은 건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조용히 머물 수 있는 마을이었다. 제주는 바다와 산, 마을과 시장이 모두 한곳에 있는 섬이다. 잠시 내려가면 다른 리듬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글은 관광지 밖에서의 제주 한 달 살기 기록이다. 숙소, 장보기, 교통, 인터넷, 병원,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본 진짜 제주 일상을 지금부터 나눈다.
왜 제주였을까 – 관광지 아닌 생활지로 선택한 이유
제주라고 하면 누구나 먼저 관광지를 떠올린다. 성산일출봉, 협재해수욕장, 한라산… 하지만 내가 원한 제주는 이런 곳이 아니었다. 나는 관광이 아니라 생활을 하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지친 일상은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하루이틀의 여행으로는 부족했고, ‘한 달’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다른 곳에 놓아두고 싶었다.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육지와는 다른 바다, 기후, 사람들, 생활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도시의 속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관광객이 붐비지 않는 마을에서라면, 조용한 리듬 속에 나를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제주시보다는 서귀포시 외곽을 선택했다. 관광지가 아닌 마을에서의 한 달은 ‘이방인으로 살아보기’에 적합했다. 시장, 작은 슈퍼, 동네 카페가 있는 평범한 생활권이 나의 거주지가 되었다. 바다 냄새와 바람, 그리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펼쳐진 하늘.
제주에서의 한 달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진짜 제주 생활 환경 – 숙소, 식비, 교통, 병원, 인터넷까지
내가 머문 곳은 애월읍 중산간마을에 위치한 단층형 주택 원룸이었다. 한 달 임대 조건으로 월세 35만 원, 보증금 20만 원. 숙소는 작지만 넓은 마당이 있었고, 방 안에는 침대,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전기레인지, 와이파이가 기본으로 갖춰져 있었다. 옆집에선 닭을 키우고 있었고, 아침이면 꼭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리들이 ‘내가 제주에 있다’는 실감을 주었다.
식비는 생각보다 들쭉날쭉했다. 하나로마트와 동네 로컬마트를 병행하며 장을 봤고,
- 제주 무 1통: 1,800원
- 달걀 30구: 5,500원
- 갈치 2마리: 9,800원
- 브로콜리 1단: 2,000원
- 고사리 나물: 1봉지 3,000원
이렇게 구성하면 일주일 식재료비는 3만~4만원 선이었다.외식은 보통 8,000~10,000원, 국수나 고기국밥은 7천 원대로 저렴한 편이었지만, 해산물 중심 메뉴는 확실히 가격대가 높았다.
교통은 렌터카 없이 지냈다. 애월 중심까지는 자전거, 장거리 이동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제주도 시내버스는 시외 지역까지 촘촘히 연결되어 있지만, 배차 간격이 길고 한 번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해서 사전 시간 확인은 필수였다. 택시는 호출 후 15~20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1만원대 초반이 대부분이었다.
병원은 애월보건지소, 제주한라병원, 동네 의원 등을 이용했다. 감기, 위염, 근육통 정도는 충분히 커버 가능했고, 약국 접근성도 좋았다. 다만 야간 응급실은 제주 시내까지 이동해야 하므로 체류 전에 미리 알아보는 게 좋다.
인터넷은 숙소 내 KT 광랜 기준 평균 다운로드 속도 90~100Mbps로 안정적이었다. 줌 회의, 구글 드라이브, 유튜브 스트리밍, 클라우드 편집 모두 문제 없었다.
관광지 아닌 동네에서 일하기 – 디지털노마드 루틴
나는 콘텐츠 제작과 온라인 마케팅을 하는 프리랜서다.
제주살이 전에는 ‘관광지 분위기 속에선 과연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애월 외곽은 걱정을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이곳은 관광지의 활기보단 동네의 고요함이 흐르는 곳이었고, 일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하루는 아침 6시 30분 기상으로 시작했다. 마을 뒤편 숲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아침밥을 간단히 만들어 먹은 뒤 9시부터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전에는 주로 콘텐츠 기획과 기초 업무를 숙소에서 집중했고, 오후에는 카페로 이동해 글쓰기와 회의를 진행했다.
‘그림책카페’, ‘책섬마을’, ‘애월조용한카페’ 같은 동네 카페들은 조용하고 좌석 간격이 넓어 원격 업무에 최적이었다. 인터넷 속도도 빠르고, 콘센트가 있는 좌석도 확보하기 쉬웠다.
하루 5~6시간 집중해서 일하고, 해가 지기 전에는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하거나 바다를 구경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관광객이 붐비는 곳과 거리를 둔 덕분에 나는 ‘방해받지 않는 집중 환경’ 속에서 훨씬 높은 업무 효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정해진 업무 시간 외엔 절대 일하지 않기’라는 규칙을 지키기 쉬웠다.
이곳은 내게 일과 삶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연습장이 되어주었다.
한 달이 만든 변화 – ‘살아봤기에 보이는 제주’의 가치
제주에서 보낸 한 달은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다.
바다를 매일 보았지만 ‘관광’은 하지 않았다.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카페에서 일했다.
그 모든 평범한 일이 제주라는 장소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그것 자체가 특별했다.
처음엔 느렸던 동네의 리듬이 어느 순간 내 것이 되었다.
불안해서 자꾸 뭔가를 하려고 했던 내 습관은,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정으로 변했다.
제주살이의 가장 큰 변화는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나’를 받아들이게 된 점이었다.
제주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는 여행지다.
하지만 이 글이 말하고 싶은 건, 제주는 충분히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관광지가 아닌 동네에서, 사람들 속에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며 살아보는 것.
그건 단순한 로망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경험이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아직 제주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은 감정이 든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눈을 감고 애월 해안도로의 파도를 떠올린다.
그 한 달이 내 삶의 흐름을 바꿔놓았고, 다시 떠날 수 있다면 나는 또 제주를 택할 것이다.